사도행전 7장 52절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죄의 반복을 끊기
20260429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해 항상 성령을 거스른다는 책망에 이이서 스데반은, 이런 일들이 역사 속에서 반복된 죄였음을 지적합니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52a). 죄가 반복된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이런 죄의 반복은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종교 법정에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수치와 핍박과 불순종의 역사를 짚었습니다. 패망하고 열강의 포로가 된 아픈 기억들을 말하면서, 이것이 반복되는 죄의 역사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스데반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초점은 이런 죄가 반복되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났고,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인 일에 이르렀으며, 이제 또 다시 사도들과 성도들을 향해 핍박을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왜 이들은 비슷한 죄를 반복했을까요? 신앙의 역사를 누구보다 더 존귀한 것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역사의 뼈아픈 가르침을 왜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들이 종교적 일상에는 철저했으나 자신의 삶이 깨어지는 은혜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종교적 이해를 앞세울 뿐, 섬김과 사랑과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또한 어떤 공동체의 여정에서 비슷한 죄가 반복된다면, 그것이 묵인되고 있다면 바로 그 부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타협이 있습니다. 심지어 적당히 괜찮은 다른 부분들, 예를 들면 선행과 선교 등을 내세워서 죄를 덮고 포장까지 합니다. 이렇게 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괜찮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러면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은혜일 것인데, 이것저것 대신하려는 건 공로주의일 뿐입니다. 잘한 건 잘한 것이고, 죄는 죄입니다. 이 불편한 구분이 일상에서 고집스럽게 지켜지지 않으면, 우리는 매우 종교적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잘 믿어서 오히려 의인을 핍박하고 예수를 죽였던 이스라엘처럼 말입니다. 만약 어떤 죄를 반복한다면 바로 그 부분 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여기엔 어떤 계산도, 타협도 들어설 자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고, 전부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서, 내 삶에서 어떤 죄가 반복되고 있습니까? 그걸 해결하지 않고서 다음 걸음은 없습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결국 그 죄로 인해 전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그 죄의 반복을 끊으십시오. 교회에서는 잘하는데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식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럴 때 죄는 하나님의 주권과 복음의 능력으로 해결됩니다. 작은 죄의 반복이 결국 전부를 망가뜨리는 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 바로 오늘. 그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내어드리십시오. 하나님이 내 죄를 다루시도록 인정하는 겁니다. 달라질 것입니다.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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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이스라엘이 반복했던 죄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2. 내 삶에 반복되고 있는 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