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세이 - 귀를 씻다

목사wannabe 2026. 4. 28. 04:35

사도행전 7장 5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귀의 할례

20260428

 

성전모독죄로 고발 당한 스데반의 긴 변론의 마지막은 책망입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말을 인용해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도리어 고발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51). 이때 '너희 조상'은 아브라함을 뿌리로한 믿음의 조상이 아닌, 광야에서 불순종을 일삼던 출애굽 1세대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모세가 요구한 마음과 귀의 할례는 받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하는 마음과 귀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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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洗耳)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를 씻는다는 뜻인데, 중국 고대 요임금이 덕망이 높은 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하자, 허유가 한 말과 행동입니다. 더러운 말을 들었으니 귀를 깨끗이 씻었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행동은 귀를 씻는 것이지만 이는 마음을 씻는 것이며, 정신을 고결하게 지켜내는 것을 뜻합니다.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들으려는 확증편향적 신앙에 울림을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종종 비유의 말씀을 전하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도 귀는 곧 마음을 뜻합니다. 더 좋은 말씀(?)이라는 허상을 찾아 돌아다니는 열심보다 어쩌면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세이-마음을 씨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말을 빌려 성전주의자들에게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책망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그리고 이어지는 사도행전의 흐름을 보면 성전주의자들은 예수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음흉한 계산과 계략은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상태를 보여줍니다. 표적을 보여주고 복음의 말씀을 전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귀가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애통해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 완악함을 스데반은 목이 곧다, 할례가 없다는 표현으로 책망한 것입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할 때, 그런 식의 선별이 나 중심의 기준일 때,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이 내려앉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듣고 수십 년 주일 예배를 해도 말투 하나 바뀌지 않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가막힌 응답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과 귀를 씻는 일이 필요합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령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죄인의 결과는 불순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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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육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의 말소리처럼 다가오시기도 하겠습니다만, 오히려 많은 경우, 말씀의 깨달음과 깨어짐으로 나타납니다. 그 세미한 음성을 알아차리는 것은 특별한 재능, 은사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세이, 마음을 씻고 귀를 씻어 순전함으로 말씀을 받아내려는 마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것이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것이며, 애통하는 자가 받을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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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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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2. 오늘 나는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살아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