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49절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솔로몬의 성전에 대해서 스데반은 구약의 선자자들의 글을 인용합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49b). 안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어떤 것을 한다고 할 때의 주의해야 할 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환경 이슈에 대한 공포마케팅의 허점을 주장하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저자 마이클 셀런버거는, 종말론적인 환경 이슈에는 선진국들의 정치적 해석이 깔려있다고 주장합니다. 탄소배출에 대해 예를 들면, 이미 성장한 선진국이 이제 발전하고 있는 제 3세계에 대해 탄소배출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는 것은 불합리하고, 동시에 탄소배출에 대한 기술적 자원을 제공하지 않는 모순을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지구를 위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정치적, 경제적 이들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정말 지구를 위한 일인지 바르게 논의하려면 이미 발전한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적 지원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약속국들에 대한 억압이 될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무엇을 위한다, 누구를 위해서다 라는 표현이 조심스러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주장과 말들 이면에는 저열한 속내를 감추고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도 비슷한 검증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을 때, 정말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일들을 통해 내가 받을 대가와 보상에 초점이 있는지는 정말 세밀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복신앙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성전이 훗날 우상처럼 되어버린 것은 정말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과 성전을 통해 선택받은 민족의 정체성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시오니즘으로 불리는 이런 사상과 운동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기들의 민족성을 고취시키고 이방인들과의 차별을 강화하는 종교권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의 지적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솔로몬도 야곱의 집을 위해서 지은 것임을 짚어가면서 스데반은 성전의 우상화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이스라엘 역사로, 성막과 성전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선자자들을 통해 성전의 허상이 무엇인지를 지적하셨습니다. 결국 그 성전은 여러 번 파괴되었고, 심지어 스데반 시대의 성전은 솔로몬 성전도 아니었습니다. 헤롯이 정치적 야욕을 품고 재건한 헤롯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말에 숨겨진 마음을 성찰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한 일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결과인지를 깊이 따져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없는 경우가 이미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보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입니다. 물론 순종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될 테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는 은혜를 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기쁨을 바르게 누리는 것이 성도의 책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정작 나 자신을 위한 저열한 계산을 감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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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성전 숭배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2. 하나님을 위한다는 희생 이전에 내가 바르게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