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사순절 [출애굽의 길] 38 보이지 않는 하나님
출애굽기 32장 4절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이스라엘은 기다림의 시견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간 후 한달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자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이 만들어 낸 것이 송아지 형상입니다. 기다려야 할 시간에 그들은 참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 하고 있습니다.
나일강 하류 델타 지역은 힉소스 시절부터 가나안계 신상과 이집트 종교가 겹겹이 중첩된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가나안의 바알을 앎은 세트-바알의 우상들이 있었고, 힘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아피스 송아지나, 바알을 상징하는 송아지 숭배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그 속에서 수 세대에 걸쳐 이집트의 제의를 보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론의 송아지 사건은 무턱대고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오래 축척된 종교적 기억이 불안이라는 틈새로 스며나온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시도, 그러니까 기다림의 시간에 보이는 무언가를 찾고 잡으려는 불안의 시도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형상화하려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것으로 증명하려 하는 모든 시도는 아론의 송아지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볼 수 없는 분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스스로 밝히신 이름은 들을 수 있었으나 형상은 허락되지 않았고, 음성은 있었으나 얼굴은 감추어졌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과 이집트 제국의 신들은 형상으로 자기이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불안을 못 견디는 죄인에게 보이는 형상이 갖는 힘은 강력합니다. 보이는 것은 즉각적인 확신을 주고, 만질 수 있는 것은 통제 가능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은 관계가 핵심이지만, 보이는 신을 섬기는 일은 관리가 핵심이 됩니다. 나의 불안과 욕망에 언제든지 답을 내놓는 신은 관리하기가 좋습니다. 서로 주고 받으면 됩니다. 보상과 응답으로 거래가 되고 맙니다. 이렇게 죄인의 방식은 자기 소유로 수렴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의 욕구에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속해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가시적인 정답이나 어떤 사인이나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눈이 보이는 뭔가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보이지 하나님을 보이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보다 더 무지하고 해서 유치한 것은 없습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고 달라지는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미 십자가라는 확실한 방향과 성경이라는 정확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신 복음 이리 이루신 은혜가 충분합니다. 해서 오늘도 충분합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오늘도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질문
1. 아론의 송아지가 의미하는 죄인의 내면은 무엇인가요?
2. 보이는 것이 없어 불안할 때 나는 무엇을 구하고 고백해야 할까요? 노트에 적어보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