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방항의 설계자

목사wannabe 2026. 3. 28. 09:36

 

 

사순절 [출애굽의 길] 34 방황의 설계자

출애굽기 19장 2절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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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설계자
20260328


여호와 닛시, 아말렉과의 전투가 있었던 르비딤을 떠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 남부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2) 또 다시 광야입니다. 살만한 곳이 아닌 곳으로만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합니다.

시내 광야는 시나이반도 남부 산악 지대 한 가운데 놓인 넓은 분지입니다. 주변에 크고 작은 구릉들로 둘러싸인 이곳에 지금은 비행장도 들어섰다고 하니, 우리가 글로 읽는 것보다 꽤 크고 넓은 지형이라는 걸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살기 좋은 곳이라 오해하면 안 됩니다. 모세 당시 이곳은 와서는 안 될 땅이기도 합니다. 겹겹이 둘러싼 산과 메마르고 건조한 곳에 샘이 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을 내셨던 르비딤에서 시내 광야까지도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내 산 앞의 넓은 분지는 출애굽 이스라엘 전부 모이기에는 좋았을지는 몰라도 물과 멀어진 곳, 온통 메마른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출애굽의 길>에서는 이 자리를 “머무르기에는 불편하지만 집중하기에는 적합한 자리”로 설명합니다. 엘림과 같은 쉼터는 아닐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되는 은혜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 백성으로 확증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며 중요한 자리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여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홍해에서 시작해서 수르 광야, 마라, 엘림, 신 광야, 그리고 르비딤으로 이어지는 걸음은 방황 같아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방황의 설계자가 하나님이셨습니다. 각각의 여정마다 의미와 섭리를 심어놓으시고 이스라엘의 불안과 아픔을 끄집어내고 다루신 섭리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군대로 빚어가시는 과정은 앞을 보면 험난하고 막막해서 방황 같은데, 뒤를 돌아보면 감사와 은혜입니다. 해서 이스라엘은 무작위로 떠돈 것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방황, 의미 없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시내 광야는 이 모든 것이 수렴되는 지점입니다. 여기까지가 아니라 이제부터가 되는 자리입니다.

의미 없는 방황이라는 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방황도 길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방황의 설계자이십니다. 그러니 방황 같아도 하나님 안에만 있으면 됩니다. 시내 산의 언약은 지금도, 오늘도 유효합니다. 오늘이라는 나의 하루가 시내 광야의 하루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안 속에서도 꿋꿋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방탕할 게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걷는 것입니다. 방황 같아도 그것이 길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처럼 말입니다.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던 십자가 골고다의 길이 온세상 구주의 길이셨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순종과 성실과 복음의 의미로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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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지도를 검색해서 출애굽기 19장이 말하는 시내 광야가 어떤 곳인지 확인해 보세요.

2. 르비딤을 떠나 또다시 광야였습니다. 이런 방황 같은 여정을 계획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과 태도로 오늘을 살아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