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출애굽의 길] 31 무엇을 먹을까
출애굽기 16장 35절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무엇을 먹을까
20260325
광야라는 현실은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입니다. 해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35). 자유도 좋고 구원도 좋지만 굶어 죽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이런 아우성에 대해서 하나님 대답은 만나였습니다.
먹고사니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등장한 신조어인데, 생계유지에 급급해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을 풍자하는 말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의 현대어라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을 쫓다가는 쫄쫄 굶을 수밖에 없는데, 사실 여기에 뿌리 깊은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되어 나중으로 미뤄둔 이상, 신념, 신앙 같은 본질적 가치가 서서히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여정은 이런 현실과 현실을 살아내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홍해를 건너고 샘을 얻으면서 이스라엘은 전진합니다. 다만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당장의 몇 걸음이 될 수도 있고, 하루 종일 걸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가 광야였다는 점입니다. 광야의 현실은 먹고 사는 게 급선무입니다. 물도 없고 풀도 없는 곳에서, 현실이 점점 더 선명해질수록 이스라엘에게는 다시 원망이 고개를 듭니다. 고생했어도 이집트에서는 먹고 살 만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만나를 주셨는데, 하나님 스스로가 양식의 공급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알 수 없는 먹거리에 이스라엘은 질문 그 자체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만나는 이해되지 않는, 설명할 수 없는 공급하심입니다. 따라서 만나의 핵심은 이집트보다 잘 먹었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삶의 필요를 누가 채워주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누구의 공급으로, 누구의 은혜로 사는가를 깨달을 때 만나는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가 됩니다. 바꿔 말하면, 만나는 신뢰를 배우는 훈련이며 경험입니다. 툭히 만나의 안식일 법칙은 더 정확합니다. 여섯째 날에는 두 배를 거두게 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거두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먹고사는 것에 대한 신앙적 기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노동의 대가로 생존을 보장받는 세속의 법칙, 그 질서에 대해 하나님은 공급의 주체를 바꾸셨는데, 더 이상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닌, 먹고 사는 것까지도 하나님께 신뢰로 맡기는 믿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럴 때 노동의 의미가 달라지고, 광야의 걸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나는 먹여줄 테니 놀고먹으라는 게 아닙니다. 광야가 우리 인생이 가야 하는 믿음의 여정이라면, 피할 수 없다면, 그 여정의 필요를 채울 것이니 믿고 맡기라는 뜻입니다. 불안해하기보다, 안절부절 못하고 들썩이기보다 믿고 감당하라는 뜻이며, 사명과 순종으로 걸어보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입니다. 지금 말입니다.
말씀질문
1. 출애굽기 16장의 만나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내 삶에 만나는 무엇일까요?
2. 만나가 깨달아질 때, 우리는 더 성실하고 더 신실할 수 있습니다. 노동 대가와 만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