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비효율의 복음

목사wannabe 2026. 3. 16. 04:50

 


사순절 23 출애굽기 13장 17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비효율의 복음

20260315

이집트를 등지고 나온 이스라엘이 가야 할 목적지는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방향을 빠른 길이 아닌 광야길로 잡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출애굽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7). 이는 완전한 비효율입니다. 무엇보다 이 여정은 무려 40년이나 걸렸습니다. 출애굽 여정은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그런데도 이 길이 옳습니다. 광야의 40년은 비효율로 알게 하신 복음입니다.

 

효율은 이 시대 누구라도 인정하는 덕목이지 않을까 합니다. 효율로 설명이 되면 설득이 쉽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효율로만 풀어낼 수 있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납득합니다. 반면 비효율은 어렵습니다. 아무리 의미를 따져도 효율이 덕목인 시대에 비효율은 낭비이고 허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효율의 중심에 속도가 있습니다. 빠르면 좋고, 좋은 일을 더 빠르게 해내면 최상입니다. 문제는 우리 신앙이 이런 빠름과 효율의 정반대쪽에 있다는 점입니다. 신앙은 빠름으로 되지 않습니다. 평생의 과정이고 느린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광야의 40년이 그렇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은 장정만 60만이라 했는데, 가족과 가축들을 더하면 200만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었을 거라 추정합니다. 이러면 빨리 가는 게 최우선의 목표여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빠른 해안길이 아닌, 시내 광야길로 돌리셨습니다. 고고학적으로 해안길은 국력을 확장했던 이집트 신왕조 중에서도 노골적인 군국주의를 내세운 19왕조 때부터 군사적 기지로 활용되었습니다. 거기엔 곳곳에 망루와 요새가 세워졌는데, 제국의 감시와 통제가 꺼지지 않는 국경길이기도 합니다. 만약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빠르다는 이유 하나로 이 길을 선택했다면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자명합니다. 전쟁에 전쟁을, 죽음에 죽음을 더해야 했을 것입니다. 원망과 후회로 애굽으로 돌아가고픈 미혹이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안길이 아닌 광야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택은 추상적인 염려가 아닌, 당시의 군사.지정학적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은 결정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결단보다 그들의 연약함을 먼저 아셨고, 그 연약함을 돌보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야길은 단지 전쟁을 피하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키워내심에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길은 빠르고 효율적인 성취가 아닙니다. 느리게 겪어가는 연단입니다. 이 의미가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지금도 광야길로 인도하십니다. 십자가의 길로 이끄십니다. 연단하시면서 돌보시고 키워가십니다.

 

비효율적인 이 과정에 순종하고 계십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겪을 때마다 실망이 없을 수는 없지만, 연단으로 받아낼 수 있을까요? 그래야 하겠습니다. 해서 방황도 길이 되고 고난도 방법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정확한 비효율의 복음이며 가장 정확한 사랑의 증명입니다. 이 길로 부르시고 이 과정으로 나를 빚으시는 연단을, 복음의 현실을 품어 안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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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질문 
1. 빠른 해안길이 아니라 거친 광야길이어야 했던 이유를 출애굽기 13장 17절은 무엇이라 설명합니까?

2. 비효율인데도 내가 받아내야 할 신앙적 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 기도할 때, 빠른 해결보다 인내와 순종, 그리고 올바름이 되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