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고집을 꺾지 못할 때

목사wannabe 2026. 3. 9. 05:00


출애굽기 9장 35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고집을 꺾지 못할 때

20260309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셨고 바로는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합니다. 10번째 재앙이 이집트를 때리고 덮을 때까지 바로는 버팁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35). 출애굽기는 바로의 고집을 완악함이라 표현했습니다. 고집을 꺾지 못하는 바로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9장은 6번째 재앙인 악성 종기와 7번째 재앙인 우박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로는 재앙이 닥치면 굽혔다가, 재앙이 지나가면 다시 고집을 부립니다. 이런 바로의 태도를 출애굽기는 완악하다고 표현했는데, 완악하다로 표현된 히브리어 ‘하자크’는 강하게 하다, 굳세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 태도인데, 하나님 뜻에 끝끝내 나를 내어드리지 않는 고집스러운 모습, 즉 목이 곧은 교만함을 표현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의 뜻을 고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트 제국의 신화와 질서에서 파라오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신의 현현이었으며 파라오의 치세를 통해 모든 질서와 번영이, 정의가 세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어떤 예언자, 신탁의 중재자가 아닙니다. 최고의 신 그 자체였기에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과 동급으로도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열 번의 재앙은 어쩌면 열 번의 설득입니다. 모세는 설득당해 순종했지만 파라오는 완강하게 거부하며 더 고집스럽게 자기를 드러냅니다. 바로의 이런 완악함과 다르지 않게 출애굽 여정의 이스라엘에게서도 완악함이 드러날 것인데, 이는 출애굽 서사가 드러내고자 하는 죄의 실체입니다. 무서운 것은, 하나님은 이 완악함이 드러나도록 그냥 두신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완악하게 하셨다고도 표현합니다. 이는 그 죄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구약 신학적 표현입니다. 죄의 실체가 이렇다고 보여주시는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이 방법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로의 완악함이 한 국가와 사회를 무너뜨렸고, 출애굽 이스라엘의 원망과 완악함이 출애굽 1세대 모두 광야 길에서 죽는 것으로 결실합니다. 완악함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관계와 공동체,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해서 우리는 출애굽의 바로를 비난의 대상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닌, 경계해야 할 거울로 읽어야 합니다. 내게도 이 고집스러움이, 하나님보다 높은 자기 의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고집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고집을 내려놓는 것. 내 자존심을 꺾는 것. 해서 내가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이 진짜 기적이며 치유이고 복음의 증명입니다. 바로의 고집보다 더 질긴 내 고집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입니다. 출애굽은 모세와 바로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세울 뜻이 없이 꺾인 모세와 여전히 자기를 내세우는 바로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바로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고 말하기는 하지만, 십자가를 짊어지지는 않는 내가 바로이고 바리새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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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질문
1. 출애굽기가 사용하는 완악하다는 말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9장 35절은 ‘하자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의 뜻을 찾아보고 기록해 보세요.

2. 내가 몸과 삶, 태도와 선택으로 받아내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완악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왜 그러는지, 어떤 이유가 있는지 일기를 쓰듯 적어보고 스스로 읽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