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40일 묵상 : 출애굽의 길] 12_ 출애굽기 1장 16절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합리화된 폭력
20260303
이집트 제국의 폭압적 통치는 마침내 생명의 문턱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강제 노역으로 일상을 짓누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일상 자체를, 내일을 지워버리고자 했습니다.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16). 제국의 영광이라는 합리화된 폭력은 지금도 말과 모양만 다를 뿐,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아픔의 자리, 미래가 없어 보이는 막막한 현실에서 죽지 못해 사는 일상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 우리의 희망은 무엇일까요?
갓 태어난 사내아이는 가려내 죽이라는 말은, 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수준을 넘어 한 민족의 미래를 제거하겠다는 폭력적 언어입니다. 하지만 영유아 살해라는 이 참담한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서 분노보다 아픔, 비통함이 먼저 찾아옵니다. 단지 이미 지나버린 과거여서 손을 댈 수 없는 덤덤함이라기보다는, 이런 폭압적인 일들에 감히 대항할 수 없는 개인의 나약함을 알기에 생기는 씁쓸한 절망이기도 합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 그에 대한 보복성 공격에 무고한 이들이 당하는 죽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사일 폭격이 초등학교를 덮쳐 180명이 넘는 학생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국의 폭력은 성경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시대의 현재이며, 여러 가치와 자본 중심의 구조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짓누르는 일들은 우리네 삶 깊숙이 들어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생명이 활기차게 살아 뛰어야 할 자리에 죽은 아이의 침묵과 같은, 회색빛 아픔이 덮어씌워졌습니다. 웃음을 잃은 삶,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십 대 청소년들, 이삼십 대 청년들에의 현실입니다. 중장년은 다른가요? 노년은 어떻습니까? 희망보다 절망이 더 현실적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신앙은 어떤 의미와 방향을 주는 걸까요? 하나님은 그 답을 출애굽이라 하셨습니다. 성경의 안목에서 생육하지 못하고 번성하지 못하는 현실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상실입니다. 삶의 의미가 싸구려 쾌락에 소비되고 맙니다. 해서 필요한 것은 이런 제국적 가치관, 세속적 의미들에서의 탈출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이 드리운 절망적 현실에서, 그 밑바닥 눈물의 자리에서 출애굽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내어주고 스스로 죽임을 당하더라도 살려내고자 하셨습니다. 해서 사순절은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사랑, 예수님이 나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하신 죽음을 되새기는 여정입니다. 죽음으로 내몰고 피상적인 즐김과 쾌락에 소비하게 하는 가치들에 물들지 않고, 나를 향한 사랑에 집중하며 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소망의 날들이어야 합니다.
거대한 제국의 폭력과 착취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매몰되어서는 내일이 없습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이것이 출애굽의 약속이며 사순절의 정신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안에서, 나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인내하고 무례히 행치 않는다 했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 했습니다. 내가 그래야겠습니다. 오늘 내가 그래야 하겠습니다. 세상 속에 살아도 세상과 다른 삶으로 출애굽이어야 하겠습니다.
말씀 질문
1. 출애굽기 1장 16절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제도화된 합리적 폭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국가, 기업, 교회, 학교 등을 바탕으로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쉽게 단념하고 포기하려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내 삶의 자리에서 성취해야 할 사랑의 진심은 어떤 것인지, 상황과 대상을 생각해 보고 구체적인 실천을 한두 가지 정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