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 구절 묵상

나그네의 정체성

 

[사순절 40일 묵상 : 출애굽의 길] 06_창세기 47장 4절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나그네의 정체성

20260224

기근을 피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만나 고센 땅으로 들어갑니다. 바로는 이들에게 생업을 묻는데,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일러준 대로 목축업이라고 답합니다(3). 그리고 이집트의 변방인 고센에 살도록 요청합니다.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4). 고센은 새롭게 정착할 땅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머무르다 돌아갈 체류지일 뿐입니다. 정주가 아니라 체류, 이것이 나그네의 정체성이며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믿음의 성도가 잊지 말아야 할 신앙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설명합니다. 셋의 후손은 가인과 라멕의 도시 문명에 대해서 주변인으로 살았고, 아브라함과 야곱은 자기들을 나그네로 소개했습니다. 신약에서도 베드로는 성도를 이 세상을 잠시 지나는 순례자로 설명하는데, 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표현들입니다. 요셉도 바로 앞에 서야 할 형들에게 거류민으로 소개할 것을 일러줍니다. 거류할 땅은 이집트의 중심지였던 태양의 도시 온(ON,헬리오폴리스)이 아니라, 한발 비켜난 땅, 변방의 고센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이집트에서 중심이 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땅의 삶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고센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피난의 땅이었고, 그들의 거주는 어디까지나 거류, 즉 임시 체류였을 뿐입니다. 세상 속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믿음의 성도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이해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일 뿐입니다. 물론 지금의 삶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거류일 뿐입니다. 이집트에서의 삶을 무시하라는 게 아닙니다. 요셉의 가족들은 이집트에서 유용한 타자로 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집트 중왕국 시대에 나일강 하류에는 기근과 생존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국경을 넘어왔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집트는 그들에게서 유용한 기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는 중왕국 시대를 떠받치는 경제적 역량이기도 했습니다. 요셉의 가족들 역시 목축업을 통해 제국의 질서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돌아가야 할 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그네의 정체성, 우리가 이 세상의 질서 속에 살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의 정주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구원과 탈출의 은혜가 임할 때까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땅에 발붙이고 땅을 딛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하늘 걸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신앙이었고, 바울과 베드로가 교회를 부를 때 늘 사용하던 핵심 언어였습니다. 해서 출애굽은 물리적 장소 이동의 사건이기 전에, 정체성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귀속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질문 

1. 요셉의 형들은 바로에게 자신들을 소개할 때 ‘거류하고자 왔다’고 했습니다. 이 표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2. 유용한 타자로 산다는 것과 그러함에도 나그네로 산다는 것을 어떻게 오늘의 삶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삶의 적용 한 가지를 정하고 오늘 실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