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40일 묵상 : 출애굽의 길] 04_에스겔 29장 3절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살아있는 권력
20260221
거대한 피라미드와 높게 솟은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정치와 문화, 종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입니다. 피라미드가 신격화된 왕의 무덤이라면, 오벨리스크는 살아있는 신 파라오의 현현을 상징합니다. 태양신 라(Ra)의 빛이 오벨리스크 정상인 파라디온에 닿을 때, 그 빛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파라오는 신의 현현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3).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드러난 파라오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이 시각과 분별이 우리 시대에도 절실합니다.
어느 시대, 어떤 문화에서든 제국의 정점에선 권력자는 자신을 신격화 했습니다. 이집트 문명의 핵심 가치와 풍요의 질서라 할 수 있는 마아트(ma'at)의 주인은 파라오였습니다. 바벨론 제국도, 앗수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헬라와 로마의 황제들 역시 자신을 신의 아들로, 신의 현현으로 끊임없이 신격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제국은 없습니다. 스스로 신이라 했던 이들의 흔적들은, 그것이 비록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물이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얼마나 허망하고 폭력적인 일들이었는지를 증거합니다. 이러한 신격화의 기반에는 노동력 착취가 깔려있습니다. 그들의 찬란한 영광과 신적 지위를 세우기 위해 제국은 언제나 종교적 폭력과 착취, 억압과 지배를 일삼았고 그것을 종교와 문화로 정당화했습니다. 노예의 고통은 당연한 것으로, 풍요의 대가를 위해서 계급적 억압은 필연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은 언제나 폭력적 착취의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은 신성화된 권세를 정면으로 해체합니다.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3). 나일 강의 풍요를 바탕으로 구축한 지배체제는 견고했습니다만, 이런 대제국의 위용을 유독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은 얕잡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악어의 아가리에 갈고리를 꿰어 강밖으로 끌어내겠다고 선언하십니다(4~5).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나 정치적 몰락의 예언만이 아닙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하나님의 날선 심판입니다. 살아있는 권세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하늘의 일갈입니다. 출애굽의 분별과 방향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속 권력에 기대어, 그것이 힘이든 돈이든, 거기에 기생하며 억압과 착취를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하나님은 철퇴를 내리십니다. 우리가 살 길은 그 속에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치와 이념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도망하여 은둔하라는 게 아닙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 생명을 살리는 참된 권세와 능력이 무엇인지를 담아내는 믿음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구원은 소유의 풍요나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구원은 높게 솟은 오벨리스크가 아니라 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