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40일 묵상 : 출애굽의 길] 03_이사야 30장 7절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0260220
이집트의 람세스2세는 이집트 제국의 절정에 선 인물입니다. 그는 이집트 문명이 꿈꿀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손에 쥔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의 군사력과 외교력은 언제나 희망의 등불 같았는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평가를 하십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7). 히스기야의 통치 시절에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은 대단한 위기였습니다. 어디서 도움을 얻을까 고민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헛된 망상을 깨뜨리시며 선언하십니다. 헛되고 무익하니라!
이사야 30장의 배경은 히스기야의 이스라엘과 산헤립으로 대표되는 신앗시리아 제국의 충돌입니다. 신흥제국 앗시리아는 근동 지방의 패권을 쥐고 땅을 장악해 갔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 이집트, 바벨론은 연합군을 형성하고 대항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입니다. 제국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작고 연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다윗을 중심으로 '제국'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만, 히스기야 당시의 상황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었습니다. 남부 이집트와 동부 바벨론은 최약체 이스라엘을 종종 방패로 내세웠고, 북부 앗수르와의 충돌은 당연하게도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곤 했습니다. 제국의 질서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깨집니다. 그들의 셈법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는 언제나 숨겨둔 마지막 카드 같은 느낌입니다. 역사적으로도 히브리 사람들이 어려울 때마다 내려갔던 곳이 이집트였는데, 거기엔 언제나 나일강의 규칙적인 자연질서 속에서 이룩한 풍요와 안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룬 엄청난 역사적 결과들 앞에서 이스라엘은 동경했을 것입니다. 거대한 신전과 신상, 높고 높은 피라미드가 보여주는 위용은 정말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더듬더리며 은근히 손을 내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7). 라합이라는 말의 뜻은 신화적 짐승인 혼돈의 괴물을 뜻합니다. 라하브라는 말을 어원으로 한 명사형 단어인데,. 라하브는 교만과 오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없는 질서, 거짓된 안정의 정점에 라합, 즉 이집트가 있습니다. 내가 신이다! 스스로를 신으로 내세웠던 왕들과 이집트의 역사가 비록 위대하고 장엄하다 하겠습니다만, 하나님의 선언은 냉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들은 모두 가만히 앉아 있는 허상일 뿐입니다. 역사의 변곡점은 제국의 힘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사야37장, 열왕기하19장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손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게 하셨습니다. 앗수르는 니느웨로 돌아가고 이집트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손만이 지배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결과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신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밤에 이집트를 바라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환경의 어떠함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입니다. 나를 도울 손길이 어디에서 올까요? 하나님 앞에 서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길, 예수가 십자가로 나아가신 길입니다. 주님은 "내가 길이다, 진리이고 생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정교한 방식과 시스템에 무지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도움은 여호와에게만 있다고 노래했던 시인처럼,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