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9절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가장 좋은 것
20260112
아브라함에 이어서 스데반은 요셉을 언급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악한 범죄로 억울하게 팔려갔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9). 조상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스데반은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죄인들의 악한 공격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 죄를 의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동행입니다.
감리교회 창시자인 웨슬리 목사님은 평생 말을 타고 거리 설교를 하며 십자가 사랑을 전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성공회 사제였으나 성공회의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도권에서 밀려나 거리의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감리교회가 세워지고 목사 안수를 시작하면서 성공회와는 결별했지만, 웨슬리 목사님은 신앙 개혁운동으로서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늘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겪었는데, 웨슬리 목사님은 임종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어려움도 없고 복음의 길이 잘 풀리고 형통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늘 이런 갈망을 갖고 서운한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만,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 아니라 동행하심입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심지어 억울한 순교의 죽음이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없애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런 죄의 현장을 허용하시면서 그 안에서 동행하며 함께 고통 당하셨습니다. 믿음의 전수는 세속적 형통이 아니라, 이 억울한 죽음, 그러니까 고난도 무너뜨리지 못한 신실한 신앙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진리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없애거나 밝게 바꿔주시는 게 답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도 함께 하심이 우리에게 주신 답입니다. 스데반은 요셉의 인생을 설명하면서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짚어냅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9). 참 독특한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선택적으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나머지 11명도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믿음의 선조들이 분명하지만, 스데반은 하나님이 요셉에게만 함께하셨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조상들의 죄악을 드러내고,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 처참한 죄의 현장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동행하셔서 그 죄를 선하고 의로운 구원의 뜻으로 바꾸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죽인 이스라엘과 동족에게 죽임 당한 십자가의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비유입니다. 어떤 죄의 시도도 하나님의 구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죽이고 멸하려 해도 하나님은 부활과 영생으로 이미 결정하시고 결론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성도는 이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오늘을 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결론을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실력입니다.
임마누엘.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지금 당장 잘되고 성공하는 게 복이라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거라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치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도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해서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있습니까? 임마누엘의 결론으로 받아내고 결실하십시오. 가장 좋은 답을 이미 주셨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이미 주셨으니 이제는 내 몫입니다. 쫄지 마십시오. 이미 승리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