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꿈보다 해몽이 중요한 이유

목사wannabe 2026. 1. 6. 06:08
 

사도행전 7장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꿈보다 해몽이 중요한 이유

20260106

 
 

스데반은 아무 것도 모르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인도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4)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다사다난했던 일들을 스데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축약합니다. 이것이 바른 해석의 힘입니다. 스데반은 특정 장소, 특정 행위를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꿈이었어도 어떻게 이해하려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쁜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좋게 해석하면 오히려 삶을 더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일 것입니다. 요즘 세대의 밈으로 표현하면 아마도 '러키비키'가 가장 비슷한 의미일 거 같습니다. 러키비키는 아이돌 장원영 씨의 말인데, 나쁜 일이 생겨도 그게 꼭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어서, 오히려 잘 되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뜻입니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을 사러 갔는데 매진되었다면, 왜 하필 이러느냐며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쓰지 않아 잘 되었다고 좋아하는 식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비교와 열등이 심각하게 삶을 짓누르는 때에 올바른 해석은 인생 전체를 뒤집고 바꾸는 축(axis)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이 말하고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해석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세상의 말들, 기준들과 달리 우리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한 기준으로 삶을 해석하고 받아냅니다. 이를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상황과 시간과 흐름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진행된다고 믿습니다. 해서 믿음의 성도는 눈에 보이는 대로, 또는 세상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목적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고자 노력합니다. 스데반이 아브라함의 삶을 설교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4).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터전으로 삼은 것은 그 땅이 좋아서, 거기가 본래 그들의 것이어서가 아닙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셔서 인도하신 땅이 가나안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이방 땅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하란에서도 먼저 찾아오시고 붙잡아 주시고 이끄신 분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잘나서도, 특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애 틈을 내고 개입하셔서 작은 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 해석이 아브라함의 삶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시는 사랑이 아브라함의 유일한 답입니다. 쉽지 않았던 떠남과 사별, 방황도 모두 하나님이 이끄신 일들이었다고, 거기가 이방 땅이었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먼저 일하셨다고 스데반은 해석합니다. 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끄셨듯이 예수를 보내시고 이끄시고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유일한 답이며 해서 유일한 믿음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모든 상황을 당신의 손 안에서 해결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믿음대로만 살면 됩니다. 다른 해석, 다른 해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믿음만 남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른 삶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해석하고 받아내고 믿음으로 바꾸면 됩니다.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