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돈으로 살 수 없는 믿음

목사wannabe 2025. 12. 29. 06:27

 

 

사도행전 6장 12절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돈으로 살 수 없는 믿음

20251229

 
 

헬라파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잡기 위해서 사람들을 매수했습니다. 매수 된 사람을 사도행전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12) 장로와 서기관들은 오늘날로 치면 주요 공직자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 기반 사회에서 공직자는 종교와 뗄 수 없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돈에 매수 당한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경제학 용어 중에 '한계효용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재화가 주는 만족감이 지속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가 지나면 포화되어 더 이상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 지점을 뜻합니다. 딸기가 좋아서 딸기를 10개 먹었을 때는 좋지만, 100개를 먹는다고 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괴로워집니다. 한계효용성을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외가 존재하는데, 실제로는 한계효용의 체감을 경험하는데도 끝도 없이 더 추구하게 되는 재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돈입니다. 2000년 대 초반에, 중산층의 일반적인 생활에서 월급 400만원이 넘어설 때 소비에 대해 무뎌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계산하지 않고 밥을 먹고 물건을 삽니다. 400만원의 수입이 주는 만족감과 1천만원이 주는 만족감이 일상적인 소비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보고였습니다. 물론 물가가 오른 지금은 400만원으로도 부족하다 하겠지만, 중산층에 관한 이 연구가 시사하는 점은,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은 단지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만 인식하는데도 사람들은 더 벌어야 한다고 느꼈다는 점입니다. 끊임없는 상대적 비교와 성공을 말하는 세상의 방식은 언제나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위선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돈을 활용하는 것과 돈에 휘둘리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바르게 다루고 활용할 때 돈은 유익하지만, 돈에 휘둘리면 돈을 위해 중요한 가치들을 소모하거나 놓치게 됩니다. 돈으로 인해 놓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믿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스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헬라파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매수했습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매수된 이들 중에는 고위 공직자라 할 수 있는 이들도 포함되었습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12). 돈을 받은 자들은 스데반을 체포하도록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가히 돈이 주는 힘이 대단합니다. 검은 돈으로 세상을 움직입니다. 돈을 잡은 그 사람들이 장로, 서기관이라 했으니 이들이 믿은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여러 갈등 중 헌금 유용이 빠지지 않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라 사실은 돈을 믿은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믿음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해서 돈을 넘어서야 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돈이 필요 없다거나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다스리고 다루어야 하는, 믿음의 하위개념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돈이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믿음은 돈으로 선한 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구하십시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아멘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