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신앙의 왜곡 : 자기합리화

목사wannabe 2025. 12. 26. 06:07
 

 

사도행전 6장 11절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신앙의 왜곡 : 자기합리화

20251226

 
 

스데반을 당해낼 수 없었던 이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고발하도록 부추깁니다.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11). 불법을 강행하면서도 이들은 신앙을 지켰다고 여길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신앙이 자기합리화로 왜곡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기꺼이 거짓과 음침한 거래를 하는 이 모습이 정말 순전한 신앙일까요? 

자기합리화란,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선택, 비합리적인 행동을 합리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심리현상입니다.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 진심으로 믿어버린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할 수 있는 자기방어기재입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는데, 하나는 신포도 이론입니다. 여우가 맛있어 보이는 포도를 따먹고 싶지만 포도나무에 올라갈 수 없을 때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을 거야.' 하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목적이나 욕구가 좌절될 때 욕구와 현실 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핑계를 대며 자기정당화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론은 달콤한 레몬이론인데, 아무리 신 레몬이라도 내 것이라면 달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다면 실망이 생깁니다. 이 실망을 피하기 위해 변명을 하며 스스로를 속이며 정당화를 시도합니다. 두 가지 모두 자신을 속인다는 점에서 위험한 마음의 방어기제인데, 문제는 이러한 자기합리화와 긍정을 헷갈린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신앙이 이런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전락할 때, 그 신앙은 왜곡되고 매우 폭력적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성전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유대교 사람들의 행동이 자기합리화로 변질된 신앙을 잘 보여줍니다. 스데반이 전하는 복음과 그를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비열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11). 그들은 돈을 써서 스데반을 고발합니다.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사람을 매수했습니다. 아마도 스스로는 성전 신앙을 지킨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스스로가 옳고 정의롭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열심이 있다고 자부하고 떳떳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방법은 불법입니다. 예수님을 돈 받고 팔았던 가룟유다와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몰아넣은 제사장들과 빌라도처럼, 스데반을 공격하는 저들은 음흉한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정당하다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들의 불법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불법적인 거래와 검은 돈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럴 수 있습니다. 극우화된 교회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바른 사유와 성찰 없이 가짜뉴스를 퍼나르며 자기 열심에 매몰됩니다. 거침없이 혐오를 쏟아냅니다.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 기꺼이 성경을 끌어다 씁니다. 일상에서도 기꺼이 상처를 주면서 신앙으로 자기합리화를 할 때도 빈번합니다. 용서를 못합니다. 신앙적 명분으로 정죄를 하면서 정당하다 여깁니다. 너는 하나님께 옳지 않다고 말하고 정죄하는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복음은 나를 변호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복음의 긍정은 내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는 변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은 내 잘못을 인정하도록 나를 낮아지게 합니다. 복음은 너의 잘못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나의 잘못을 고백하게 합니다. 해서 필요한 것은 신앙의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내 잘못을 인정하는 복음입니다. 너를 지적하기보다 나를 고백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