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장 9절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순종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20251223
스데반의 활동은 당시 유대 사회에 큰 도전이었습니다. 특히나 그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헬라어로 자유민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것을 들은 사람들과 분쟁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9) 복음에 순종했는데 왜 과정이 힘겹고 어려운 것일까요? 이런 의문이 우리의 순종에 불안을 주고 걸림돌이 되게 합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만해도 예수 믿어 집에서 구박 받고 매 맞았다는 소문이 흔했습니다. 부흥회나 집회의 단골 예화이기도 했습니다. 예수쟁이가 집안에 들어와 망하게 됐다는 원망도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에 너무 열성적이어서 집안 일을 뒷전으로 했다면 불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교회 다니고 예배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족이나 이웃의 핍박을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그런 상황을 직접 볼 때마다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행복하고 감사해야지, 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이 생기는 걸까?' 이런 의문은 하늘의 복을 세상의 행복과 풍요로 오해한 전형적인 기복 신앙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의를 위해여 박해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고, 이 말씀에 순종한 참 믿음의 성도들은 예수를 믿어 핍박을 받으면서도 은혜와 감사를 놓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다른 좁은 길이어서, 어떤 때에는 십자가의 주님처럼 수치를 당하기도 하고, 성경의 전도자들과 교회들처럼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예수 믿어 성공했다, 예수 믿었더니 문제가 해결되고 잘 되었다는 건 공식이나 기준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는 한 부분일 뿐입니다. 오히려 삶의 많은 영역에서 믿음의 성도는 예수님으로 인해 기꺼이 손해를 보고 자발적으로 낮아지며 섬기면서도, 때로는 억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마5:10).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하늘의 영광과 소망입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복음증거에 거센 도전이 생겼습니다.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9). 헬라 지역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급진적인 성전주의자들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합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에서 자기의 기반을 버려두고 예루살렘으로 복귀했을 만큼 열성적인 급진주의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에 순종할수록 논쟁이 일었습니다. 핍박이 거세지고 공격이 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스데반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니, 멈출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짜 소망과 복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멈출 수 없는 삶. 어떤 핍박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소망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순종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대적 마귀는 순종을 공격할 수밖에 없고, 참 믿음은 거친 반발을, 혹은 교묘한 타협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여기서 잘 되는 게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덧입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성도의 복이 아닙니다. 진실한 순종과 지혜로운 섬김이어야 하겠습니다. 굴하지 않는 복음으로 세상과 다른 빛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