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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절 묵상

신앙의 수동성과 주도성

 

사도행전 5장 42절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신앙의 수동성과 주도성

20251209

 
 

삶의 자리로 돌아온 사도들과 신앙 공동체의 일상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42).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이끄심에 자기를 내어드리는 수동성, 그리고 실제로 삶의 자리에서 맡겨진 것을 끝까지 해내는 주도성이 복음으로 살아가는 실제 일상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철저한 수동성과 자발적인 주도성의 조화입니다. 

신경과학자 장동선 씨는 우리 삶에 유해한 것과 유익한 것을 구분해서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숏폼이 뇌에 미치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뇌과학적 습관이 무엇인지 등등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하게 하는 다양한 내용을 전문가들과의 대화로 알려줍니다. 그중 기억에 남아 자주 인용하는 내용은 수동성과 주도성에 관한 지침입니다. 성숙하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태도 중에 매우 비슷한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정말 하지 않는 자제력과 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시도하고 해내려 하는 주도성, 그리고 타인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는 독립성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인격과 인생 안에서 조화롭게 섞여서 삶을 성숙하게 하며, 이런 특성을 가진 이들이 어딜 가든 인정받고 관계를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맡겨진 일을 매우 탁월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기에 결과도 좋습니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은 기준입니다. 무엇을 왜 안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 필요하고, 무엇을 시도하고 해내야 하는지 올바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 '기준'을 제시합니다. 욕망과 욕구를 성취하고 자아를 추구하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적 기준에 따라 세상과는 다른 소망과 태도를 갖추게 하고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재판정을 빠져나온 사도들은 일상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매를 맺고 더 엄한 경고를 받았으니 몸을 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사도들은 복음에 더 열심을 냈습니다. 주님이 남기신 대사명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자기를 내어드립니다. 이 수동성이 모든 것의 기반이었습니다.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핍박과 공격은 더 심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사명에 순종하여 살았습니다. 계산하고 타협하지 않고 해야 할 복음 증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권력자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말들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이 복음이 끝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내게 주신 믿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나의 삶은 내 뜻대로의 삶이 아니라 철저하게 복음을 따르는 수동이어야 합니다. 나아가 일상에서 이 복음을 최선으로 살아내는 주도성이어야 합니다. 대충 적당히 해서 되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기꺼이 행동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며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사랑하게 하시는 뜻에 순종하여 생명을 품고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살아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그렇게 살면 손해 본다는 말들은 대적의 속임수입니다. 손해가 생긴다면 기꺼이 손해를 보고 마음을 얻으면 됩니다. 생명을 얻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