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진짜 집중해야 할 것은

목사wannabe 2025. 12. 4. 05:50

 

 

사도행전 5장 38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진짜 집중해야 할 것은

20251204

 
 

아이러니하게도 유대교 한복판에서 사도들은 당시 유대교의 최고봉이라 하는 가말리엘에게서 뜻하지 않았던 도움을 받습니다. 물론 가말리엘이 복음에 호의적이었다는 건 아닙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38). 참 지혜로운 판단입니다. 유대교가 정작 집중해야 할 것은 자신들의 신앙입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율법의 본질을 따져야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체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유대교만 그럴까요?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래저래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존중한다고는 해도 때로는 너무 노골적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난을 받곤 합니다. 이단들의 공격적인 포교가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교회를 묘사하는 방식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현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방송국 앞에 가서 시위를 해야 한다고도 하고, 공신력 있는 기독교 합의체를 통해 반박을 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이단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촉구하기도 합니다. 모두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에 충성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 전에 교회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내적인 반성과 자정입니다. 교회 바깥의 표현들에 민감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올바름에 더 집중하고 주목해야 합니다. 어쩌면 교회 바깥의 말들은 모두 교회 안의 잘못을 향한 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대해 걱정하고 터부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바르게 알고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나는 괜찮은데 너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한 교회는 더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가말리엘의 말이 그렇습니다. 가말리엘을 통해 사도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습니다. 전혀 뜻밖에도 종교 처형이 될 수 있었던 순간에 산헤드린의 핵심 중 한 명인 가말리엘이 상황을 진정시킵니다. 그는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38)라고 말합니다. 정말 교활하리만치 지혜롭다고 해야 할까요? 가말리엘은 지나온 역사에서 반짝했으나 사라지고만 소요들을 예로 들면서 사도들의 복음 또한 그럴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도 복음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으려 하기보다는 사라질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굳이 또 피를 흘려야 할 것이 아니라는 실리적 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유대교가 진심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자신들의 신앙입니다. 구원자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로 내몰고 로마에게 내어준 피의 값이 자기들에게 떨어졌다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단이나 부정적인 비판이 우려된다면 그것들에 대응하기보다는 교회의 올바름을 먼저 따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이며 올바른 신앙일 것입니다. 

진짜 집중해야 할 것은 바깥의 소리가 아닙니다. 내 안의 소리, 나의 올바름이며 교회의 온전함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발하기 보다 성찰과 성숙이 필요합니다. 믿을만한 사람이 되지도 못하면서 복음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들은 위선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