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29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신앙은 언제 단호해야 하는가
20251124
너희로 인해 성전과 신앙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성전 권력자들에게 사도들은 이전보다 더욱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 두 번이나 반복된 유대교의 심문과 재판에서 사도들은 단호합니다. 예수님처럼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종을 말하면서 부활의 복음을 증언합니다. 단호함과 복음의 기개가 대단합니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단호해야 할까요?
삶을 살아가는데 본능적으로 필요한 태도가 '적응과 저항'입니다. 적응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 재빨리 익숙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적응력이 중요합니다. 낯선 환경이나 관계 속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은 안정감이 있어 보입니다. 자잘한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수용하고 개선하면서, 새로움에 몰입하면서 마치 본래 내 것인 것처럼 받아내기 때문입니다. 대게 실력은 이런 적응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잘 적응하는 것은 그만큼 잘 해낸다는 뜻입니다. 저항은 정반대의 일입니다. 고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유지하는 것을 저항한다고 표현합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힘은 저항력입니다. 몸이 질병을 이기는 것이 저항력입니다. 바이러스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저항함으로써 새로운 항체를 만들고 더 건강해집니다. 악에 타협하지 않는 것 역시 저항입니다. 적응이 받아들여 내재화 하는 것이라면 저항은 단호하게 거부하여 본질을 지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건은 이 두 가지를 바르게 선택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적응과 저항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전파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 문화에 살아남기 위해 적응했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일수록 타협하지 않아야 할 것들에 단호하게 저항하며 전해졌습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복음의 증인들은 신앙의 적응과 저항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기존 질서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 성전주의와 율법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단호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두 번이나 유대교의 재판정에 불려간 사도들은 단호했습니다. 권력으로 누르고 짐짓 점잖은 척 타이르는 이들에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 권력으로 구조화된 공간에서, 그런 사람들 속에서, 짓누르는 분위기 속에서 사도들은 단호합니다. 지켜야 할 부활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언제 단호해야 할까요? 의도적으로 타협을 요구당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런 단호함보다는 교묘하게, 의도적으로 타협을 강요당할 때는 칼같이 단호해야 합니다. 이 분별은 중요합니다. 대다수 변질과 타협과 무너짐은 적응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저항하지 않아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적당히 타협하는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앙의 온전함과 순전함에서 타협하게 만드는 일에 대하여 성도는 단호해야 합니다. 이럴 때 단호함은 너를 향하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먼저 단단하고 단호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꽉 막힌 꼰대나 외골수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 지켜야 할 순전함을 나 스스로 지켜나갈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에 흔들려 불안한 삶이 아니라 확고하고 단호한 신앙으로 꿋꿋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