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혹시나 역시나

목사wannabe 2025. 11. 19. 08:08

 

 

사도행전 5장 24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혹시나 역시나

20251119

 
 

감옥은 비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황을 들은 권력자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24) 권력자들은 당황했고 불안해 하면서 의심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 되리라고 직감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이런 느낌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도 역시나가 되고 마는데, 어쩌면 혹시나 하는 그때가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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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와 비슷한 말로 '설마'가 있습니다. 이 둘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설마'가 부정적인 추측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혹시'는 짐작대로, 어쩌면 같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때 긍정적이라는 건 추측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의심에 대해서 '설마'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의도이고 '혹시'는 그럴 거라는 의도입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종교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이 위협받는 것을 신앙의 위협으로 투사했습니다. 그들은 유일신을 수호하고 신앙을 보수한다고 여겼으나 실상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고집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전 밖,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이단적이었으며 마땅히 제거해야 할 사상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성전을 허물라고까지 했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예수를 제거했는데 이상하게도 예수의 제자라는 이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합니다. 병 고침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이 따릅니다. 성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이 일들을 견딜 수 없는 종교 권력자들은 그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이 빈 감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 일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24). 그들은 의혹했습니다. 이 말은 매우 당황하게 하는 어떤 의심을 뜻합니다. 단어의 용례가 신약성경에 2번 밖에 나오지 않아 해석의 풍성함은 부족합니다만, 이 말은 혹시와 설마를 아슬아슬하게 오갑니다. 아마도 부정적인 의도인 설마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 설마 예수가 부활했겠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는 독자에게는 그들의 당황스러운 의심이 혹시나로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바뀔 수 있지는 않을까? 혹시 복음을 알고 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말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혹시와 설마의 경계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혹시나가 역시나로 될 때입니다. 혹시 기대했지만 역시 실망으로 되어 버릴 때, 우리는 넘어집니다. 자기들의 권력과 권위를 지키고 싶었던 이들에게 빈 감옥은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설마? 혹시? 이 두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일이 어찌 될까 했다는 설명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게 기회였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알고 십자가를 알았던 그들에게, 복음의 사건이 다시 재현된 그 상황이, 해서 일어난 마음의 의심과 두려움이 복음의 기회였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역시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기회를 놓쳐버리고 역시나 죄의 길을 선택할 때 말입니다.

 

​오늘 내 삶은, 우리의 일상은 어떨까요? 혹시나 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바로 그때가 주님께 기도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설마 하는 그때가 돌이켜야 할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도적같이 찾아올 심판과 죄의 미혹에 깨어있지 않으면 역시나 좌절과 죽음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상황을 조망하며 성령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마음을 분별하십시오. 멈춰서 하나님께 옳음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