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신앙에도 방식이 있다

목사wannabe 2025. 11. 12. 06:25

 

 

사도행전 5장 17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신앙에도 방식이 있다

20251112

 
 

복음으로 불일듯 일어나는 성전 바깥의 신앙 공동체와는 달리 기존의 세력인 성전 안의 사람들은 심기가 뒤틀렸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7). 그들의 마음에 시기가 가득했습니다. 기득권은 해오던 대로, 자기가 가진 힘을 사용해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성전 안의 사람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이들입니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한국 교회의 중산층화를 연구한 김진호 목사의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는 기성 교인들의  수평이동 현상을 파고들면서 웰빙이라는 문화 현상이 어떻게 교회 안의 가치로 자리 잡았는지를 알려줍니다. 저자는 산업화를 통해 나타난 도시형 대형교회를 선발대형교회로, 이후 신도시 중심으로 분화해 나타난 대형교회를 후발대형교회로 분류해서 설명하는데, 후발대형교회의 유형은 중산층의 수평 이동 교인이 주류로 구성되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당연히 교회 내 문화 역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나타나는 교회문화가 웰빙보수주의입니다. 웰빙보수주의는 교회 내 민주적인 절차를 중요시하고 비슷한 경제적 수준의 교류가 필수적이며, 삶을 누리고 영위하는 데 신앙의 초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특유의 계급문화가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더 교묘한 편견과 차별이 문화적 현상으로 교회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교회가 거룩한 차별성으로 세상과의 다름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세속적 문화 추구로 세상과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세속화는 여전히 교묘하게 작동 중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가 같은 선에 있는지 정직하게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현대 교회는 초대 교회를 핍박했던 유대교와 닮아 보입니다. 복음은 폭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성전 안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전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중심 축이 이동합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성전 당국은 핵심인물인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내면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7). 사두개인들은 당시 종교 권력을 장악했던 이들입니다. 권력자들이 완력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집, 이스라엘의 정신인 유대교 신앙을 책임진다는 이들이 로마처럼, 제국들처럼 힘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세속의 방식을 따라 갑니다. 종교의 세속화가 이렇습니다. 신앙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 그러니까 힘과 돈으로 자기를 드러냅니다. 지금의 교회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좀 더 나은 시설, 편리한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세련된 교회학교 환경, 수준 있는 교인들과의 교류 등 교회를 선택하는 조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세상보다 나은 어떤 것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소망이 교회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본질입니다. 

​믿음의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나은 환경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이고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는 부활의 신앙, 순교자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방식, 신앙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나 역시 십자가의 희생이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미혹과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부활의 소망이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방식 속에서도 복음의 방식이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