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14절
믿고 주께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교회다움의 회복
20251107
초기 신앙 공동체가 날마다 솔로몬 행각에 모여 부활을 증언할 때, 성전 안의 유대교 사람들은 경계했고 성전 밖의 세상 사람들은 칭송했습니다. 그 현장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믿고 주께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14). 핍박으로 위축되기는커녕 더 많아졌습니다. 더 모였습니다. 찾아오는 공동체, 찾아오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다움이 회복될 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가을 전도 시즌이 지나고 있습니다. 10월 말에서부터 11월 중순까지, 대다수 교회는 전도 이벤트를 열고 갖가지 형식으로 새가족을 초청하며 생명의 잔치를 엽니다. 문제는 복음의 증거가 방법적인 것에 집착할 뿐, 본질의 회복을 위한 성찰과 변화는 없다는 점입니다. 이러면 전도는 연간 이벤트로 전락해 버리고, 숫자 놀음이 되고 맙니다. 몇 명이 모였다, 작년보다 많았다/적었다 하는 숫자의 비교만 남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식의 이벤트로는 정착이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이웃을 모시고 온 교인이나 함께 와주신 이웃이나 서로 한 번 즐기고 끝나버리는 형식입니다. 물론 이후에 다시 만나고 재초청하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뒷수습 하는 식의 어려움이 더 커 보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신박한 방법이 아닙니다. 교회다움의 회복입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을 보여줍니다. "믿고 주께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14).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관계하지 않기로 하고 극도로 경계하는 무리가 있었고, 반면 이 공동체를 칭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사람들이 더 모였습니다. 여기 사용된 '더'라는 표현이 비교급인 걸로 보아, 아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이전과 이후의 비교로 볼 수 있습니다. 두려운 사건이 있었음에도 더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끌어모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아온다고 했을 때 사도행전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모이도록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게 되었다는 현상입니다. 의도적으로 사람을 모은 게 아니라 그들이 모인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처럼 이벤트를 하고 집회를 해서 와보라고 한 게 아닙니다. 은과 금이 있어서 오면 준다고 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남녀가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 수동태의 표현으로 보아 누가-행전의 저자는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다움이 회복될 때, 그러니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고 성도들 서로가 아끼며 섬기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주십니다. 해서 우리가 정말로 집중해야 할 것은 교회다움의 회복입니다. 이벤트나 전도축제도 필요하지만 온 사람이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습니다. 교회다움의 회복이 더 중요합니다. 훨씬 더 필요합니다. 교회다움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내가 교회라는 것을, 내 몸이 성전이라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는 참 믿음이 절실하고 절박합니다.
내가 교회로 살아야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회복이어야 합니다. 나로 그치지 말고 너와 함께, 우리가 함께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해서 누가 오더라도 환대하여 사랑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거룩을 누리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 시작이 오늘입니다. 나로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