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영광의 공동체

목사wannabe 2025. 11. 6. 07:02

 

 

사도행전 5장 13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백성이 칭송하더라

 

 

영광의 공동체

20251106

 
 

솔로몬 행각에 모인 이들은 유대교 당국이 금지한 부활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이들니다. 이제 사도행전은 교회 바깥으로 넘쳐 흐르는 공동체의 확장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때 세상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백성이 칭송하더라"(13). 두 가지 상반된 반응입니다. 더 관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칭송 받는 것,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된 반응입니다. 유대교는 상종하지 않으려 했고, 세상은 칭찬했습니다. 

교회가 혐오 시설로 분류되어 종종 교회 장소로 허가가 되지 않거나 불편 민원이 종종 접수되기도 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개척교회나 교회 이전으로 장소를 알아볼 때, 행정 접수 과정에서 이런 반응들이 확인된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 시대 교회의 위치가 정말 바닥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마도 교회에 대한 이런 반응들은 그동안 교회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가식적이었는지, 또한 얼마나 정치편향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물론 특정한 일부의 잘못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이 이렇다는 것에는 진솔한 자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초대 교회도 좋은 평가만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엔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백성이 칭송하더라"(13) 상종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거기가 솔로몬 행각(12)이었다는 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유대교 안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손절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 부활을 말하는 이들과는 같이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유대교 당국의 경고가 있기도 했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유대교의 입장에서 이단으로 치부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저마다의 사정과 계산으로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모였던 신앙 공동체에 얼씬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이랬으니 유대교 안에서는 경계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성전 너머의 세상, 그러니까 이방인들과 소외된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서는 전혀 다른 반응입니다. 사도행전은 백성이 칭송했다고 설명하는데, 말의 뜻대로 칭찬받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칭찬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랑과 섬김, 이타적인 삶의 모습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세상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공동체의 신앙과 성령 충만이 놀라웠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의 인정을 구한다거나 타협한다는 게 아닙니다. 모범이 되는 것, 모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회 윤리적으로 더 성숙한 모델이 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정직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칭찬 받는 성도가 되십시오.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으로 정직과 겸손, 성실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열심보다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믿음의 성도는 누구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친절하고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래야 합니다. 누구보다 더 희생해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을 위해서, 내게 주신 은혜가 있어서 그래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삶일 때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