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죄의 열심

목사wannabe 2025. 11. 3. 06:09
 

사도행전 5장 9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죄의 열심

20251103

 
 

삽비라를 향한 베드로의 질문에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죄의 열심이 어떤 것인지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9) '함께 꾀하다'라는 말은 동의하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서로의 욕망을 자극해서 죄의 연합을 이룹니다. 

주범과 공범의 차이는 큽니다. 재판 과정에 있어서 이 차이는 향령의 차이가 되는데, 주범에 비해 공범은 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습니다. 이는 법정 원칙이기도 합니다. 다만 공범이 공동정범으로 밝혀지면 단순 방조가 아닌 해당 범죄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판단하기에 주범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법률이 정한 바가 이러해서 범죄자들은 어떻게든 주범이나 공동정범이 아닌 공범으로 빠지려고 애씁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합리적인 변명을 늘어놓고 증거를 제시합니다. 법리의 다툼이 시작되고 더 낮은 형량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법정에서는 논쟁일지 모르나, 사회적 인식으로는 주범이든 공범이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범죄의 현장에서 그들은 서로 죄로 묶였기 때문입니다. 죄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악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악인의 연합이 있고 그들의 부름이 있고, 그런 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의 탐욕이 서로를 부르는 모양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죄는 열심히 서로를 엮습니다. 그 결과, 죄의 세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삽비라에게 그 죄에 동참한 것을 지적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9a). 함께 꾀한다는 말이 동의를 뜻하기에 삽비라는 주범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남편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형량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나는 주범이 아니라고 변명해도 죄의 결과가 이렇습니다. 죄의 경중이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죄의 결과가 같다는 사실은 정말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크건 작건) 그 결과가 같습니다. 이런 사실을 적당히 감추고 죄는 열심히 서로를 묶고 엮습니다. 에덴에서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여전히 죄는 열심을 낼 것입니다. 어떻게든 서로를 엮어 죄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너랑 같이 죽을 것이니 괜찮다고 여길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나의 죄로 너를 죽이는 일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죄의 열심은 무서운 결과입니다. 

 

​죄는 지금도 엮어낼 탐심을 찾고 있습니다. 혼자 하는 범죄는 애매하지만 함께 하는 범죄는 당당해지고 당연해집니다. 이런 죄의 열심을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남들도 저렇게 한다고 핑계하는 순간, 죽음이 문 앞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죄의 연합, 죄의 열심에서 나를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이 거룩입니다. 삽비라의 이름이 되지 않도록 오늘도 나를 떼어놓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