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3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교회 안의 우상
20251027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팔았던 땅이 그들의 전부였는지, 일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다른 이들처럼 이 부부도 소유(땅)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들의 심령을 꿰뚫어 보며 엄중하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 이 일은 교회 바깥이 아니라 부활의 은혜, 성령 충만한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빛보다 그림자를 선택한 이들에게서 교회 안에 버젓이 존재하는 우상을 깨닫습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는 일종의 FA시즌이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한 후 새해를 준비함에 있어서 목회자의 사임과 이임이 결정되기도 하고, 교회 내부적으로는 다음 해 세울 교회 임원(임직자)을 선별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목회자의 청빙 목적이나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진통이 많다는 점이며, 교회 임원의 선별 역시 다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선택하고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꾸려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래서인지 정말 치열한 경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교회도 이러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어쩌면 '더 좋은 사람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오늘날 교회는, 교회마저도 무한 경쟁과 엘리트 주의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게 아닐까요? 이는 분명 교회 안의 우상입니다. 물론 누구나 수긍할 정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깨어있지 않으면 선한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합법적인 악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선한 일이 우상이 된 교회의 현실, 교회 안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성령의 공동체는 서로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공산당처럼 무소유를 법제화 하고 강제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기꺼이 사랑으로 자기의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기의 것을 감춘 이들이 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소유를 팔았고, 그중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를 내놓았습니다. 이들을 향해 베드로의 무서운 추궁이 시작됩니다.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3) 베드로가 지적하는 이들의 죄는 성령을 속인 것입니다. 속였다는 표현으로 짐작해 볼 때, 이들은 자기 것이라는 탐심과 교회 안의 명예, 둘 다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공동체 안에서 사도들을 통해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함께 목격했으면서도 이들은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적당히 나를 포장하고 칭찬을 받으려는 교회 안의 우상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빛이 아니라 그림자입니다. 어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빛도 아닙니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이 존재합니다. 교회 안의 우상이 이렇습니다. 진심은 없고 적당한 모양새만 드러내려 합니다. 사랑은 없고 체면만 있습니다. 복음은 없고 율법만 있습니다.
초대 교회도 이러했다면 오늘날 교회는 더 심각한 상태가 아닐까요? 해서 우리는 나 자신을 늘 점검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한다지만 실상 그 속내가 나의 만족이나 체면, 또는 적당한 칭찬을 위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진심이 아니라면 가짜입니다. 전부가 아니라면 전무입니다. 예배도, 헌신도 우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