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8절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사도행전 4장 8절
성령 충만의 증거
20250909
시작된 종교 재판. 성전의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심판했던 그때처럼 사도들을 둘러싸고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질문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베드로가 입술을 열어 대답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8)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모습을 성령이 충만했다고 묘사합니다. 그는 성령의 권세로 부활의 주님을 전합니다. 어떤 신비한 일이 아니라 차분히 복음을 전하는 이 모습을 성경은 성령 충만으로 증언합니다.
성령에 대한 오해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개념 자체가 지식적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적 신비라는 점에서 성령의 위격과 존재,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견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일하심을 초월적이고 기적적인 사건이나 신비한 어떤 것으로 보려 하는 경향입니다. 스텐리 하우어스와 윌리엄 윌리몬이 공저한 <성령>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성경이 가르치거나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성령을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기독교가 성령 강림에 의해 몸을 입고 물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본질상 하늘에 속하고 영적 특성ㅇ르 지닌다고 보는 관념만큼 해로운 생각은 없다." 과거 90년대 성행했던 일명 '기도원 신앙'은 한국 교회의 역사적 특성 중 하나일 것인데, 성령 충만을 방언이나 치유, 기적 같은 것으로만 보게 했던 대표적인 오해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영적'이라는 모호한 말로 신비한 뉘앙스를 추구하는 설교자들을 종종 봅니다. <성령>의 저자들은 오히려 성경이 성령을 물적 특성으로 계시한다고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듯이,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몸을 통해서) 성령의 일하심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몸을 통해서 나타나는 성령의 일하심이라는 것은 신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상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신비한 기적이기도 합니다. 전혀 안 변할 것 같던 그 사람의 언어가 달라지고, 조금씩 죄와 멀어지는 일들이 나타납니다. 관계가 회복되고 용서와 용납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일상의 변화가 가장 신비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를 신학용어로는 성화라고 말합니다. 종교재판을 받는 베드로는 예전처럼 도망가지 않고, 또한 벌벌 떨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담대한 태도로 말합니다. 이 모습을 사도행전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8)라고 묘사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라면 불이 임해서 두 사람을 둘러싸던지, 신비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 두 사람만 비추던지, 천사가 나타나던지 뭐 이래야 할 것 같은데, 베드로는 그저 말하고 있습니다. 평범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신비입니다.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 가 숨어 지내던 실패한 자가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가 달라졌습니다. 말이 달라졌습니다. 말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말을 담아내는 그의 몸, 즉 그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가장 신비한 현상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변화가, 그러니까 말이 달라지고 말의 내용이 달라지고 말을 담아내는 몸의 태도가 달라지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성령은 지금 나의 몸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바라고 계십니다. 대단한 응답, 기적의 치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 우선하는 것은 내 인격의 변화입니다. 해서 성령을 구하십시오. 내 인격으로 드러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십시오. 가장 평범해 보여도 가장 신비한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