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고난이 반복 된다면

목사wannabe 2025. 9. 8. 05:50

 

 

사도행전 4장 7절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사도행전 4장 7절

고난이 반복된다면 

20250908

 
 

솔로몬 행각에서 붙잡힌 베드로와 요한은 다음날 종교재판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관리들과 장로들, 서기관들이 다 모였습니다(5). 그리고 대제사장 문중까지 참여했습니다(6). 그들은 사도들을 둘러싸고 심문을 합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 익숙한 장면,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던 그 밤, 그 사람들입니다. 질문까지도 똑같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고난은 무슨 의미일까요? 

​헬무트 틸리케는 나치 독일의 폭력 속에서 날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채로 예배하며 말씀을 전했던 피 뭍은 설교자입니다. 그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무엇인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틸리케의 책 곳곳에서는 현실과 믿음 사이의 괴로움과 불안, 생과 사의 두려움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신과 악마 사이>에서 틸리케는 고난이 어려운 이유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이라고 했고, <하나님의 침묵>에서는 신자의 부르짖음에 침묵하시는 것 같은 현실의 불안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고난과 불안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질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 주변의 쥐 죽은 듯한 침묵과 답답한 정적은 혹시 우리가 아직 그분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그분이 일부러 침묵하는 게 아닐까?" 반복되는 고난은 무섭습니다. 어쩌면 신앙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틸리케의 말처럼 고난을 통과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온전히 통과하지 않는 이상 비슷한 고난은 반복될 것입니다. 그 지점을 믿음으로 확실하게 넘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말입니다. 솔로몬 행각에서 부활의 주님을 전하다 붙잡힌 베드로와 요한은 침묵의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날 종교재판이 열리는데, 이 장면이 익숙합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붙잡힌 후 그 새벽에 겪으신 종교재판과 꼭 닮아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 그 장소, 그 질문입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7). 완전히 똑같은 이 상황에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전에 그들은 그 상황에서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상황이 재현된 것입니다. 해서 해결해야 할 고난입니다.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고난입니다. 그날 그 밤에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순종이었다면, 이제 베드로와 요한 역시 순종으로 이 상황을 통과해야 합니다. 반복된 고난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반드시 순종으로 통과해야 할 신앙의 계단입니다. 순종만이 길이 됩니다. 그러니 진지하게 순종을 물어야 합니다. 무엇이 순종인지, 어떤 교묘한 계산이 있는 건 아닌지 내 중심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고난이 반복된다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순종을 점검하십시오. 정직한 마음으로 해결해야 할 것을 점검하십시오. 어쩌면 적당히 되지는 않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중요합니다. 전에는 적당히 넘겼는데 이제는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추궁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해서 포기할 수 없는 주님의 마음이 반복되는 고난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순종을 이루어야 합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