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11절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사도행전 3장 11절
성전 바깥에서 샬롬
평생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인생이 이제는 경계를 허물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자신도, 그것을 목격한 이들도 모두 놀라웠을 것입니다. 그 놀람으로 모두 베르와 요한에게로 돌아와 솔로몬 행각에 모입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는 행각에 모이거늘"(11).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성전 바깥 뜰에 세워진 솔로몬 행각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목 마른 이들이 모였습니다. 성전 바깥 솔로몬 행각에서 샬롬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에 오는 많은 사람의 출입이 가장 잦은 곳입니다. 성전 동편 바깥 뜰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긴 복도인데,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성경을 강론하고 가르침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유대인들과 율법을 논쟁했던 장소도 솔로몬 행각입니다. 여기는 할례를 받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올 수 있는 곳이고, 절기에 제물로 사용될 동물들을 거래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셨던 장소도 바로 솔로몬 행각이었습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는 행각에 모이거든"(11). 미문은 성전 남쪽이었고 솔로몬 행각은 성전 동쪽이었으니까,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으로 모였다는 것은 장소의 이동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결과 부정결로 차이를 두던 성전 안쪽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유롭게 오가는 성전 바깥 뜰이라는 점, 둘은 성령이 이끄시는 참된 변화와 회복은 웅장한 건물인 성전이 아니라 솔로몬 행각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성령의 임재와 그로인한 복음의 역사는 더 이상 건물로 칭하는 성전 안에 갇혀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임재 후에 복음이 마가의 다락방을 넘어 각 나라의 방언으로 확장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성전을 넘어 성전 바깥에서 복음은 확장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병든 자, 소외된 자, 이방인들까지도 샬롬의 왕(솔로몬의 뜻)과 함께 구원하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의 일하심은 이렇게 확장으로 나타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바깥으로, 성전에서 솔로몬 행각으로, 예루살렘에서 열방으로 복음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승부를 보려는 우리 시대 교회의 현실에 도전을 줍니다. 모이는 것과 집약하는 것을 믿음의 행동으로 추구하는 오늘날의 교회는 확장하고 흩어지며 흘러가는 것에는 소홀했습니다. 이는 분명한 약점이고 복음의 오해입니다.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흩어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교회는 단단한 신앙을 위해 매일 교회로 모이게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앞으로도 흩어진 곳, 나아간 곳에서의 올바른 신앙과 도전, 믿음의 유지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성령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끼리만 좋은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교회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이고 커진다 한들, 돌아간 일상에서 복음적인 삶이 아니라면 그 숫자와 규모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성전 바깥에서 샬롬을 이루어야 합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은 모든 담과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미 이루신 화평을 우리 일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도전하고 받아내며 힘써야 합니다. 해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의 일상, 내 삶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복음입니다. 나의 관계, 내가 하는 태도, 섬김의 손길 등,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통해 샬롬이 나타나도록 이끌고 계십니다. 보내시고 함께 하시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