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4절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사도행전 3장 4절
의미 있는 시선
미문 앞에서 날마다 구걸하는 이를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며 동전 몇 푼을 던져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수한 사람이 오가도 그에게 말을 걸고 관계를 맺는 이는 없습니다. 서로가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관계를 시도합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4). 그 짧은 순간, 몇 구절에 '보다'라는 행동이 네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의미 있는 시선이 교차합니다. 어쩌면 기적은 서로를 제대로 보는 것에서부터 나타나는 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 아파트 경비원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며 인격을 무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입주민의 갑질이라고 했던 그 사건으로 아파트 경비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이 터지기까지 그런 폭언과 비인격적인 행동이 몇 번이었을까요? 알고 보니 그 아파트는 아무나 경비원으로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입주민의 고급 승용차를 발렛파킹 해야 하기에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채용했는데, 선발된 경비원 대부분은 은퇴 전 기업 임원이었거나 교수, 고위직 공무원 등이 다수였습니다. 노년 취업에 내몰려 선택한 일이 인생이 멍들고 깨지는 불상사가 되고 만 것입니다. 문제는 아파트 입주민의 후속조치였습니다. 방송 취재 결과, 입주민들은 적당히 돈을 모금해서 배상하는 것으로 무마하려 했고, 심지어 반발하는 경비원 전부를 해고하고 경비 업체를 변경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제가 목사로서 의미 있게 보았던 것은, 그 아파트 건너편에 초대형교회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파트 입주민 중 일부는 그 교회 출석교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교회 담임목사도 입주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아무런 행동이 없었습니다. 지역 내, 교회 앞에서 생명을 잃는 사건이 생겼고, 그 뒤로 계속 분란이 일었는데도 교회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세상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가난한 자와 약자, 소외된 자를 환대하라는 성경의 무수한 구절들이 무색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탄식으로 엎드려도 모자라 보입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고통과 절규에 민감한 분이십니다. 해서 은혜를 입은 이, 구원하시는 사랑을 경험한 이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듣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구걸하는 이를 주목했던 것은 필연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의미 있는 시선으로 걸인과 마주한 이는 없었습니다. 걸인의 눈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자기만족, 자기중심적인 이유로 성전을 오갈 뿐, 성전의 의미도,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도 몰랐습니다. 다만 성령에 감동되어 순종하는 두 사람만이 유일하게 다릅니다. 사도들은 생명의 시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걸인을 주목합니다. 의미와 의도로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이 시선에서부터 기적이 시작됩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과 시선 자체가 기적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내 판단과 인식을 너머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우리 시선에 담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뻔한 일상이어도,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시선일 때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의미 있게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세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대단한 뭐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로 따뜻하게 바라보고 관계를 맺어간다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