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사도행전 2장 45절
몸으로 드러난 믿음
성령이 임하신 결과로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은혜와 사랑 안에 머무는 자생적인 공동체였는데, 사도행전은 공동체의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44-45). 소유의 경계가 사라진 이 모습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몸으로 드러난 믿음입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반드시 몸으로 드러납니다.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스와 목회자 윌리엄 윌리몬은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공저한 <성령>은 삼위 중 성령에 대한 건강한 이해를 돕는 내용인데, 삼위의 한 위격인 성령을 이해함에 있어서 두 사람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삼위의 하나된 관계로서 성령은 단독으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과, 성령은 어떤 신비하고 초월적인 일하심일지라도 반드시 몸을 통해 일하신다는 점입니다. "성경이 가르치거나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성령을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기독교가 성령 강림에 의해 몸을 입고 물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분질상 하늘에 속하고 영적 특성을 지닌다고 보는 관념만큼 해로운 생각은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서로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겨 주라고 명령하셨다(요13:14). 이 행위만큼 물질적이고 육체적이며 몸과 밀접하게 연관된 일도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신학자와 목회자가 말해서가 아니라, 성경이 보여주는 성령 임재와 그 결과들은 모두 몸이었습니다. 이럴 때 '몸'이란, 공동체 관계이며 교회 안에서만이 아닌 그 몸이 가 있는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섬김과 희생을 뜻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처음 신앙 공동체의 모습 역시 몸으로 나타난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44-45). 이것을 성도의 교제 즉 코이노니아라고 하는데, 초기 신앙 공동체의 코이노니아에는 말씀과 기도의 교제만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 그러니까 몸의 필요를 아낌없이 나누고 채우는 섬김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동체로 모인 이들이 자기의 재산을 다 팔고 숙식을 했다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구절이 뜻하는 것은 재산을 다 팔아야 한다, 개인 소유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 어려운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섬겼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방식이 바로 몸이었습니다. 그들은 몸을 써서 도왔고 몸의 필요를 채웠으며 서로 하나 된 관계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은혜로 속사람이 변화되고 성령에 순종하여 겉사람의 행실이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너와 내가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되었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 몸을 성경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즉 교회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몸으로서의 교회는 서로 몸의 표현이 달라진 공동체 관계입니다. 교회에 온다고 다 한 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만 좋은 것은 바른 몸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몸으로 드러납니다. 내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가 교회입니다.
내 몸으로 믿음이 표현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사할 때 할렐루아~ 하는 것일까요? 그런 방식도 있겠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섬기고 돕는 것입니다. 몸으로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랑을 무슨 이벤트처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바른 믿음과 사랑은 일상이어야 합니다. 나의 일상에서 내 몸으로 믿음을 이루십시오. 몸으로 표현된 것이 진짜 믿음이며 진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