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무엇에 대한 구원입니까

목사wannabe 2025. 7. 17. 07:41

 

 

 

사도행전 2장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사도행전 2장 40절

무엇에 대한 구원입니까

 
 

복음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이들에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으라 했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40). 패역하다는 말의 뜻은 구부러지고 왜곡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세상의 가치, 즉 죄에 대한 구원입니다. 

넷플릭스 신작 중 <열대의 묵시록>은 브라질의 극우파 대통령이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어떠할지 아직 모르지만, 기독교인이라면 눈여겨 보아야 할 작품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정치 세력화 된 복음주의 급부상에 대해 브라질의 근대 역사를 배경으로 탁월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주장하듯, 이런 현상은 비단 브라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가 세력을 이루어 정치에 가담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이긴 합니다만, MAGA를 주장하는 극우 노선의 배후에 복음주의 교회와 교인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우리나라도 태극기와 전광훈, 여기에 반동성애까지 하나로 묶어 기독교가 정치세력화를 꾀한다는 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적 가치, 복음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정치 세력의 근간으로서 복음을 수단으로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신정일치 시대의 역사나 에스더 같은 포로기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왜곡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발로서 역사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야 할 왕의 정체성을 거듭 따져 묻기는 해도, 복음의 정치세력화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을 그 사회적 배경 안에서 드러냅니다. 성경에 대한 이런 이해는 난해해 보일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정치적 군림이나 외적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변화와 선한 영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를 기독교 정신으로 지배하려는 것도, 반대로 현실을 도피해서 홀로 수도자적으로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세상의 가치들에 물들지 않고 십자가로 변화된 삶을 실현하며 복음을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삶을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40). 패역한 세대에 군림하고 지배하라는 게 아닙니다. 속세에서 도망쳐 홀로 경건하게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뒤틀어진 세상의 가치 속에서도 오직 십자가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의 가치로 살라는 강력한 권면입니다. 이런 의미를 바탕으로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과연 나는 예수를 믿어서 무엇에 구원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가난에서 구원해 달라 하고, 다른 이는 질병에서의 구원을, 갈등과 문제 해결, 경쟁, 정치까지 다 다른 구원을 말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달라진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내가 구원받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죄입니다. 다른 구원은 없습니다. 죄에서의 구원이 없다면 다른 게 다 달라져도 그저 죄일 뿐입니다. 

질병이 치유되고 가난이나 갈등이 해소되어도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헛될 뿐입니다. 해서 성도는 날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패역한 죄의 현실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은 죄를 해결하신 유일한 구원입니다. 내 안의 죄가 십자가로 하나씩 해결될 때에만 진정한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가 목숨 걸고 가장 우선 구해야 할 것은 죄에서의 구원, 이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