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33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장 33절
보여지는 존재로 산다
부활의 증거로 성령의 임재를 설명하는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증인으로써 구약의 말씀과 다윗의 시편, 그리고 자신들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33). 가장 강력한 증거는 말과 삶의 일치입니다. 성도는 보여지는 존재(증거)로 살게 하셨습니다.
요즘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 중 하나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 마치 최고의 행복인 것처럼 말하고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SNS에는 그런 사진들, 표현들이 넘쳐나고 거기에 달아 놓은 짤막한 글들은 모두 그런 삶이 최고인 것처럼 표현합니다. 표현이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그런 게시물에 달린 '좋아요'와 '하트' 그리고 부러움을 담은 수많은 댓글은 과연 이 시대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오늘날 최고 선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알면서도 외면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실제 현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현실이 그래서 눈에 보이는 화면의 허상을 더 부러워하며 대리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여진다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중요한 이해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며 등잔대 위에 올려둔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방식이 바로 성도입니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를 통해 복음의 빛이 나타나고 죄의 어둠이 물러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절망 같아도 성도는 희망의 불꽃으로 살아, 함께 하는 이들에게 삶의 참된 의미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그런 역할로 사용하십니다. 십자가를 드러내는 인생, 즉 보여지는 존재로 살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낮술에 취한 것 아니냐는 조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설명합니다. 요엘의 말씀, 다윗의 시편으로 예언의 성취를 선언하고 성령의 임재가 무엇인지를 증거합니다. "...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33b).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성도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보고 듣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보여지는 존재로, 빛된 존재로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여지는 존재로서 성도는 성공한 인생,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부러운 인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 절망적인 사건들을 대하는 온전한 태도, 좋건 싫건 무엇이든 상관없이 , 세상과 구별된 흐트러지지 않는 신앙적인 삶의 자세로 드러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도 세상은 믿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러나 아픔을 치유하고 복음을 완성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보게 하는 존재가 성도입니다.
어쩌면 성도는 빛으로 드러나거나 죄로 발각되거나, 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발각되기 보다는 드러나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온통 발각되고만 있어,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디, 빛으로 드러나십시오. 환한 얼굴로, 순전한 삶으로 세상을 밝혀 주십시오. 성령의 일하심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주십시오. 작은 것 하나도 주께 하듯 하면서, 기도로 품어가면서 보여주십시오. 십자가 복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