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수) 한 구절 묵상
누가복음 2장 25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복음 2장 25절
기다림에 지쳤다면
예수님이 태어난 후 할례와 정결례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을 때 거기서 시므온과 선지자 안나를 만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로부터 메시아 예언을 듣고 놀랐습니다. 누가복음은 메시아를 만난 이 사람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5).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 이들의 기다림은 평생이었습니다. 당장 확답을 못 받으면 조급해 하는 우리에게 이 구절은 믿음의 기다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말했습니다.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더 행복을 느끼게 될 거고, 네 시가 되면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걱정이 되고 그러지. 결국 난 행복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게 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불쑥 나타나면 몇 시에 마음을 예쁘게 단장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잖아." 여우의 이 말은 어린 왕자의 명대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장입니다. 기다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 표현들은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기다림을 받아내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어린 왕자를 통해 배워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도 기다리는 이들이 나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과 메시아 예언의 확증을 연결합니다. 이때 확증된 예언의 증인으로서 성전에 들어간 시므온과 성전에서 평생을 섬기는 여선지자 안나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기다림에 평생을 건 인생들입니다. 지난한 기다림을 누가복음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25)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26) 시므온이 평생을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설명입니다. 여선지자 안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젊어 남편을 잃은 후 84세가 되기까지 성전에서 섬기며 기도하는 삶(37)이었습니다. 평생을 건 기다림 끝에 메시아를 목격하고 증언한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이 기다린 세월은 몇 십 년이었을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던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야 이루어졌고,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살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어떤가요?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으면서부터 고난을 겪었고 그 뒤로 십 몇 년이 지나서야 유대의 왕으로 세워집니다. 계시록의 마지막은 '마라나타'인데, 주님 오심을 기다리겠다는 순전한 이 고백은 우리의 조급함을 따뜻하게 덮어주기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함께 하시는 성령을 누리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시간은 매우 불안하고 순간마다 버겁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희망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다림에 지쳤습니까? 괜찮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기에 믿음도 빨라야 한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잘못된 방향이라면 그 빠름은 빠를수록 헛될 뿐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빠름에 주눅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가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한 걸음이라도 밀고 가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주님은 이미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걸음을 격려하십니다. 그러니 빠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너무 느린 거 같아 지쳤다면 잠시 멈추고 주변을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가는 겁니다. 천천히, 우직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