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금) 한 구절 묵상
예레미야 48장 26절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
예레미야 48장 26절
나만의 천국에서
탈출하기
모압의 죄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교만입니다(29). 하나님은 스스로 높아진 모압을 끌어내리시는데, 그 방법은 아이러니 하게도 스스로의 성공에 빠지게 놔두는 것입니다.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26). 자기 스스로에게 빠져 취해버린 상태.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잘 되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여기는 잘못된 신앙은 나르시시즘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곡된 자기애로 나만의 천국을 기대한다면 모압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위험 요소로 지목된 것은 이단일 것입니다. 처음 신앙 공동체가 생겨난 이후부터 교묘하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이단은 유대주의자들 또는 영지주의자들이었는데, 유대주의자들은 할례를 주장하는 율법적 왜곡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부인하는 반쪽짜리 믿음으로 공동체를 병들게 했습니다. 이러한 이단은 약간씩 형태만 달리할 뿐 지금까지도 신앙을 왜곡하고 공격하는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신앙은 이단으로 무너진 적은 없습니다. 그만큼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이단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숱하게 반복할 뿐, 신앙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진짜 위기는 내부에서부터 생겨났습니다. 유대교의 배타적인 선민의식과 시오니즘, 중세 교회의 정치적 결탁과 교리주의, 현대교회의 기복적 신앙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가장 신실해 보이는 모습으로 가장 타락한 신앙이 되고 말았는데, 이런 현상의 핵심에는 모두 자아도취, 왜곡된 자기애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취해 자기만의 천국을 만들고 안에서부터 곪고 썩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적 자아도취는 세속적 성공추구와 모양만 다를 뿐, 매우 유사한 행태를 보입니다. 나의 성공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나의 잘 됨이 곧 좋은 믿음인 양 여깁니다. 이는 구약의 사사들, 성전과 제사장들이 범했던 죄, 왕들이 빠졌던 죄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중세의 교회가 타락한 현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의 김진호 목사는 저서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에서 현대 한국 교회 안에서 양태된 도시 중심의 대형 교회 현상, 그리고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이기적인 신앙의 형태를 웰빙 보수주의라며 지적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말하면서도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구원을 개인 구원으로 축소시키고 제한시켰다면서, 이는 심각한 복음의 왜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교만한 모압의 죄와 유사합니다. 모압을 향해 하나님은 자아도취에 빠진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스스로에게 취한 자라고 하시면서 결국 그것이 세상의 조롱꺼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서 볼 때 모압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깨어 근신하라는 말씀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내가 모압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나르시시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 그런 태도, 너를 돌아보지 않는 무심함도 결국 자기 중심의 왜곡된 신앙입니다. 나만의 천국이라는 건 없습니다. 너를 놓치고 나만 좋은 것을 하나님은 천국이라고 하실까요? 헛된 망상과 이기적인 욕망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탈출은 빠를수록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