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목) 한 구절 묵상
예레미야 31장 22절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
예레미야 31장 22절
사랑이 하는 일
회복을 외치는 선지자의 예언은 풍성한 비유로 가득합니다. 이 비유들의 절정은 하나님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참회가 서로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로 흩어진 이들을 다시 부르시고, 부름을 받은 이들은 뉘우치며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서로가 서로를 찾는 사랑의 현장을 예레미야는 눈으로 보듯 절절한 감성으로 전합니다.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22).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사랑이 하는 일이 이렇습니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이 한 일>에는 창세기를 모티브로 한 다섯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쉽게 지나쳤던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마음을 거쳐 모호한 다섯 가지의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모두 사랑을 묻는 질문입니다. 그중 가장 강렬한 질문이 이삭의 번제 사건을 통해 제시됩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셨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시 빼앗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도 약속의 아들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걸까요? 이삭 번제 사건은 그동안 교회에서 무수히 듣고 배웠음에도 작가의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조적이고 그래서 어설픈 그간의 대답이 우리 스스로에게도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하나님의 이 요구가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드러내 밝히지는 않기에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므로- 확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작가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독자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답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입니다. 본래 사랑이 이렇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주신 회복의 말씀에도 이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멸망 당해 없어져버린 북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부르시고 다시 노래하게 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유다 역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회복되고 둘은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그 모습을 선지자는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와 여자로 표현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22). 이 말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속이 뒤집어지도록 이스라엘을 찾으셨고(20) 울며 돌아온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자 둘러싸듯 그 앞에 거합니다. 사랑이 하는 일이 이렇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나를 내어주는 모습. 기꺼이 상대에게 맞추려고 나를 낮추고 섬기는 태도를 갖게 합니다. 어떻게든 그 마음에 들고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애틋한 표현이 나타납니다. 사랑은 이렇습니다. 나에게 맞추려 하지 않고 너에게 맞추려 합니다. 사랑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 사랑은 어떤가요? 끝없이 나만을 채우려는 아귀처럼 하나님께 요구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게 진짜 사랑인지 진중하게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너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는 나의 내어줌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이 하는 일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 사랑이 진짜라면 나는 오늘 무엇을 내어드리고 맞춰드리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