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월) 한 구절 묵상
예레미야 26장 8절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틀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예레미야 26장 8절
나에게 불편한 말씀
예레미야 26장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한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와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면 실로와 같이 된다는 선지자의 설교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폭언을 쏟아냅니다.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8). 불편한 메시지를 들은 이들의 반발은 폭력적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의 핵심 가치는 위로와 행복인 것 같습니다. 메스컴이나 SNS를 가득 채운 메시지는 거의 모두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위로가 달콤하고 일상을 떠난 여행의 달콤함에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먹방이 성행하고 여행과 캠핑 영상이 최고의 인기를 누립니다. 이는 일종의 보상 심리인데, 버거운 현실에 대한 대리 충족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보상 심리가 교회 안에서도 성행합니다. 듣기 좋은 말씀, 위로해 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선호하고 죄를 지적하거나 회개, 희생 같은 메시지는 불편해 합니다. <불편한 말씀의 능력>의 저자 빅터 쿨리진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번영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은 때로는 거칠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요즘 설교자들이 그리스도인의 행복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거룩함에 더 관심이 있으셨다"고 말하면서 말씀을 취사선택하려는 자기 중심적인 행태를 꼬집습니다. 이런 일들이 예레미야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2)하시면서 성전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혹시라도 그들이 돌이키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메시지를 들은 성전 관리자들은 선지자를 끌어내렸고, 성전의 파괴를 말하는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라며 온 백성 앞에서 그를 죽이자고 선동했습니다. 폭력적인 무리에게 붙잡혀 둘러싸인 선지자는 거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이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듣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레미야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불편한 말씀을 꺼려합니다. 책갈피 말씀 구절에는 온갖 축복의 구절이 가득하고 설교단에서는 기복적인 메시지가 성행합니다. 축복과 위로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축복과 위로는 성경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순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성도에게 약속하신 위로와 복된 삶은 올바른 믿음으로 순종할 때 누리게 되는 결과입니다. 해서 진정한 위로, 진짜 복은 적당한 타협과 거짓, 자기 중심적인 만족을 깨뜨리는 불편한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불편한 말씀이 오히려 살리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불편한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정확하게 나를 겨냥하고 목표물인 죄를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여 불편한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한 가지만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그 뜻에 순종하는 오늘이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