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금) 한 구절 묵상
마가복음 9장 35절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지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믓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마가복음 9장 35절
가장 큰 사람
마가의 신학 중 중요한 요소는 메시아 비밀이라고 불리는 예수님의 자기 숨김입니다. 특히 수난에 대한 말씀 후에는 반드시 말하지 말라는 금령이 따라올 정도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단속시키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난의 메시아는 숨겨지지 않습니다.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다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대비됩니다.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고 말다툼을 했습니다. 이들의 말다툼에 주님이 답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첫째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교와 열등은 정말이지 쓸데없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이들도 자신의 성취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스스로 점수를 따져보거나 어느 기준의 대상과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함에도 비교는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요소를 남깁니다. 찌꺼기처럼 비교의 결과에 불만족스러운 정서가 남아 마음이 지저분해지고 맙니다. 비교는 결과적으로, 교만하거나 열등하거나 둘 중 하나이기 쉽습니다. 이런 우리 마음의 속내에 대해서 주님은 역설로 답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35) 우리는 너보다 커야 큰 것이고, 너보다 높아야 첫째라고 여기는 반면, 주님은 끝이어야 첫째이고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기준에 큰 것과 주님 기준의 큰 것은 젼혀 다릅니다. 그러함에도 주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을 고집하고 남들과 비교하면 결과는 둘 중 하나입니다. 교만하거나 열등하거나.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삶에서 시도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내 실체가 어떠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악한 속내는 섬기는 체 하며 큰 자가 되기를 바랄 수도 있겠습니다. 이는 권장할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섬기기라도 하면서 바란다는 점에서는 섬기지도 않는 것보다 낫다 여길 정도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교인들은 섬김에 너무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마지막에 먹는 자가 첫째입니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본다면 좋겠습니다. 섬김은 조건이 없습니다. 그래서 섬김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어떻게 섬기겠습니까? 이걸 해결해야 진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