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장 13절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잠언 29장 13절
심판은 내 것이 아니다
잠언이 우리에게 주는 통찰 가운데 하나는 세상의 악과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에 악이 흥왕해도 결국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이 견해를 지혜자는 꾸준히 이어가면서 희망을 잃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13)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구절의 뜻은 가난한 자, 포학한 자 둘 다에게 하나님의 뜻(빛)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왜 악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걸까? 이것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신앙의 난제입니다. 악인을 바로바로 심판하시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지고, 올바르게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세상의 주권자라 하시면서도 악을 방관하는 것 같아, 우리 마음이 억울할 때가 종종 생깁니다. 세상은 이런 인과응보를 정의라고 말하고, 이런 정의이기 때문에 복수를 정당화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과응보, 권선징악이 즉각적인 심판으로 나타난다면 세상에 남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조금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악인은 결국 심판 받을 것입니다. 이를 지연된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의 빛,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둘은, 그래서 하나님은 악인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에 약간의 억울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나를 위한 하늘의 넓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돌이켜야 할 악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즉각적인 심판이라면 어쩌면 나도 그 심판에 남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종종 범하는 실수와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심판자가 되려 한다는 점입니다. 나의 작은 죄는 용서받을만 하고, 저들의 죄는 크게 보입니다. 아주 나빠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큰 죄나 작은 죄나 모두 죄일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나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사랑의 삶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잠언의 가르침,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나의 구원과 악한 자들의 심판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은 잘 사는 것 같아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자는 멸망당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나는 온전히 나의 길을 가는 것, 나의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심판은 주권자에게 맡겨드리고 내게 주신 십자가의 길을 꿋꿋하게 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