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토) 한 구절 묵상
잠언 25장 23절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잠언 25장 23절
흉 보지 않는 교회
잠언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기본은 정직입니다. 나의 이득을 위해 남을 속이지 않는 것, 이웃을 거짓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인 관계의 기초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해서, 지혜자는 비방하지 말 것을 언급합니다.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23) 남을 험담하고 흉보는 것은 일순간의 만족은 될지 모르나, 결국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조심스럽게 인자함으로 서로 마주하여 말할 수 없다면, 뒷말은 언제나 관계의 먹구름을 가져올 것입니다.
소문이 제일 빠른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고 대답했습니다. 직장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라 교회였다는 것은 교회의 갈 길이 아득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험담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잡담과 험담의 순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정도 말도 못하고 살면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린다고도 하고, 뒤에서 욕이라도 하라고, 그래야 마음이 좀 풀린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악순환일 뿐입니다. 잠시 스트레스가 풀릴지는 몰라도 문제는 여전하고, 결국 험담이 더 큰 험담으로, 그런 만남과 모임으로 점점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로는 하나도 나아질 게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인 뒷말이 교회 안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참소하는 혀는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23). 기독교 신앙의 순기능 중 하나는 나눔과 고백, 위로와 격려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험담과 흉보기, 정죄와 혐오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로 모여 함께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시껄렁한 가십이 가득하고 흉보며 덕스럽지 않은 "참소"로 채운다면 결국 교회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넉넉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행여나 흉보는 말이 오가더라도 다시 마음을 붙잡아,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대화로 상황을 바꾸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성도의 역할이요, 빛과 소금의 영향입니다.
흉 보지 않는 교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혹 부정적인 말이 나와도 부드럽게 그 말과 마음을 감싸주고, 그렇게 말하는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교회라면, 그런 신뢰라면 교회는 언제나 거칠고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따뜻하고 안전한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이런 성도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