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구별의 차이
사도행전 10장 12절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차별과 구별의 차이
20261002
환상 중에 베드로의 눈앞에 펼쳐진 보지가 깉은 그릇에는 온갖 짐승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12). 혼돈일까요? 혼란이었을까요? 그릇 안에는 정결과 부정결이 경계 없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라면, 우리 신앙인은 어떻게 받아내야 할까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점함에 대하여>의 저자 팀 하포트는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새로운 기술들이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하거나 인간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진단합니다. 단편적인 예가 바로 인터넷과 SNS입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세계를 하나도 만든 이 기술이 이제는 오히려 사람들의 뇌를 썩게 하고 지능만이 아니라 사회성까지도 저하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존재입니다. 이런 본성을 존중하는 대신 완벽하게 설계된 각본에 인간을 밀어 넣다 보니 생긴 현상입니다. (중략) 언제나 이 세상을 움직인 건 매끈하게 정돈된 시스템이 아닌 모호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팀 하포트는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죄인의 습성은 차별하고 구분짓고 계급을 나누는데 익숙합니다. 이를 잘 짜인 구조로 만들어 가는데, 그러다보니 너와 나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고 구별이 아닌 차별로 타인을 정죄하고 맙니다. 이런 방식으로 권력이 형성되었는데, 이런 방식의 권력에 교회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성과 속을 나누고, 깨끗함과 더러움을 나누면서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해왔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은 전혀 다른 말씀을 전합니다. 성과 속으로 구분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그 안에서의 조화와 섬김이 세계를 운영하시는 창조주의 섭리임을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의 환상도 그러한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환상 중에 내려온 보자기 같은 그릇에는 온갖 짐승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정결과 부정결이 혼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열리고 내려온 것이라면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일까요?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이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물론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거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이겠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이 구원하시는 사랑, 선행하신 복음의 은혜입니다. 문제는 차별하고 급을 나누려는 우리의 악한 습성입니다. 거룩히 구별되어야 할 신앙의 책임은 마땅한 것이지만, 너를 정죄하고 혐오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부정함이 내게로 전염되는 게 아니라, 복음 안에서 나를 통해 사랑과 은혜가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또한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합니다. 그 안에서 차별이 아닌, 세상과 함께 살며 구별된 자로, 나아가 섬기며 사랑하는 자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너와 나를 차별하고 그 결과로 나보다 못한 너로 판단하며 정죄할 때, 그것이 십자가 복음과 가장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지고서, 세상을 차별하면서 성취될 구원이라는 건 없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차별과 구별은 어떤지,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구별된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네 발이든 두 발이든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구별되게 살되 차별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 중심의 판단과 기준을 내려놓고 은혜를 흘려보내고 하나 되어가는 오늘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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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 안에 담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 내가 차별하고 있던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경계를 넘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적용을 세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