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베드로가 되기를
사도행전 10장 5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누군가의 베드로가 되기를
20260921
하나님의 사자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불러올 것을 명령합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5). 왜 하나님의 사자는 직접 회심과 성령의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닌, 굳이 베드로를 통해서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유를 정학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방인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야 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전파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초기 신앙공동체의 흐름이나 복음이 전파되고 확장되었던 교회사의 맥락에서 볼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희안하게도 복음전파의 보편성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니 복음은 효율적일 수가 없습니다. 필요한 곳에 천사가 내려와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과 공생애,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계시해 준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빠르겠습니까? 그런데 특별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복음은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전파되었습니다. 신비하고 특별한 경우에도 자생적으로 복음이 자라난 곳은 없습니다. 누군가 반드시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복음을 확증해 줌으로써 복음은 자라났습니다. 사도행전의 고넬료의 회심도 여기에 속합니다. 신실한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이 신비한 경험의 핵심 메시지는 '베드로를 만나라;입니다.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베드로를 만나라고 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방법이 '복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효율은커녕 복음은 느리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의 필요성입니다. 이 사람을 오늘날에는 '선교사'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이 호칭을 해외 거주 타민족 선교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사역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성도는 모두 선교적 사명을 지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분절화 된 지금의 시대와 세대, 사회에 대하여 선교사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남기신 대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을 때 그 땅끝은 멀리 해외 선교지이기도 하겠지만, 더 정확하게는 내 삶이 가닿는 일상, 복음이 필요한 일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성도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베드로여야 합니다. 누군가는 나에게 베드로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서로가 고넬료이며 베드로가 되어 산다면 좋겠습니다.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필요했습니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베드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나 역시 누군가의 베드로여야만 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삶으로 증언하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를 세워줄 베드로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고넬료처럼 베드로를 찾고, 나아가 누군가의 베드로가 되어 살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밋밋한 날들이 생기 넘치는 복음의 현장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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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하나님의 사자는 왜 베드로를 청하라고 했을까요?
2. 나에게 베드로 같았던 성도는 누구였습니까? 오늘 내가 만나야 할 고넬료는 누구일까요? 이 뜻을 위해서 기도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