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낮은 데로 임하소서

목사wannabe 2026. 9. 14. 06:39

사도행전 9장 43절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낮은 데로 임하소서

20260914

 

베드로는 욥바에서 여러 날 머물렀습니다. 이때 여러 날은 매우 많은 날들입니다. 긴 기간을 머물렀던 거처를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43). 기적의 현장인 다비다의 집이 아니라 천한 신분이이었던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었습니다. 낮은 데로 향하는 사도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새빛교회 안요한 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는 실명의 질병과 시련 속에서 복음에 눈을 뜬 한 사람이 평생 맹인과 가난한 이들, 버려진 이들을 돌보는 목회자로 살게 된 이야기입니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80년대 흥행순위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80년대라고 하면, 한국 기독교의 전성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눈만 뜨면 골목마다 교회가 생기고 십자가가 걸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2000년대를 지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원인 중 핵심이 바로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세속적 가치와 기준이 교회로 스며든 것을 세속화라고 하는데요, 거대한 부동산과 많은 숫자가 기업과 다르지 않아, 한국 기독교를 두고 기업화된 전형적인 모델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세속적 가치에 잠식당한 교회의 전형적인 특징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차별화입니다. 구제와 섬김, 봉사가 어떤 이벤트처럼 되어버려서 삶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고 흐르는 사랑과는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성경이 전해주는 초기 신앙 공동체, 또는 초기 교회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오히려 유대교의 성전주의, 중세 가톨릭의 교권주의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역사가 설명하듯이, 이런 현상은 쇠락의 증상들입니다. 높아지려는 모든 것들은 십자가와 다릅니다. 십자가는 철저하게 낮은 곳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욥바의 베드로에게서 낮은 십자가를 배웁니다. 다비다를 살린 사건으로 욥바의 많은 이들이 회심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욥바에서 베드로는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는데, 그의 거차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사체에서 가죽을 떼어내 다듬고 판매하는 무두장이는 천민 중에서도 멸시 받는 신분이었습니다. 특히나 유대교에서는 죽은 짐승을 만지는 것을 부정하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무두장이는 누구도 환대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왜 다비다의 좋은 집이 아니라 천한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었을까요? 성경이 이에 대해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흐름과 문맥을 따라 유추하기는, 경계를 넘어서는 복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복음의 사람 베드로는 성전을 넘어서는 사람입니다. 그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정결과 부정결을 넘어섭니다. 율법이 정해 놓은 기준을 복음이 넘어서고 흐르고 퍼져간다는 것을 베드로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경계를 넘는 방향입니다. 그는 낮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그를 통해 더 낮은 곳, 이방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낮은 곳, 낮은 데로 향합니다. 그래서 나에게까지 이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낮고 낮은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으로 내가 구원받았습니다. 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베드로처럼, 낮은 데로 흐르고 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책임과 의무 이전에, 복음과 사랑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오늘 내 눈에 보인 낮은 곳은 어디입니까? 낮아진 마음과 현실은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 그 사람과 그 상황에 나를 보내신 예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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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베드로가 욥바에 머물렀던 ​​​거처는 어디였습니까? 

2. 내 주변의 낮은 곳은 어디, 누구일까요? 어떻게 섬기고 사랑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 구체적인 적용을 세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