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도 두셨을까
사도행전 9장 37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왜 그대로 두셨을까
20260903
신실하게 섬기며 온 삶으로 생명을 건지는 일을 해오던 다비다에게 질병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사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37). 왜 하나님은 바로 고쳐주지 않으시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 중에 두셨을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쉽게 걸려 넘어집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사랑을 불신하고 맙니다.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의 저자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아픔과 상실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녀가 큰 죄를 짓고 이기적이어서 벌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교사로 살았고, 평생 주님께 쓰임 받으며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선교사는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했고, 재혼한 남편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상실과 아픔, 질병과의 고된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삶으로 그녀가 하는 말입니다. "나는 첫 남편이 선교지에서 죽임을 당한 뒤 하나님 내 과부 상태를 통해 영광받기를 원하신다는 점을 아주 천천히 깨달아 갔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상실의 아픔조차도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상실로 인해 남겨진 고된 삶의 상태 역시 하나님의 소유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내 삶을 가리켜 제물이라는 표현을 쓸 때 강조점은 상실과 슬픔, 포기가 아니다. 강조점은 하나님이 그분께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을 내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다시 받아주신다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상실과 고난, 아픔을 죄악시합니다. 잘못한 게 있어서 벌을 받았다는 권선징악의 보편 논리를 펼치기도 하고, 아픔이 없는 것을 행복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픔과 고난, 실패와 좌절, 심지어 죽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들 역시 하나님의 것임을 강조합니다. 여제자 다비다의 병과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삶을 바쳐 헌신하고 구제한 다비다에게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그토록 믿음이 좋았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심지어 그 질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도대체 누가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비다의 질병도, 그녀의 죽음도 하나님이 주셨다면 하나님께로 다시 돌려드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하는 말,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주의하십시오. 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게 진리는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질병을 그대로 두셨다면 순전한 순종과 감사로 그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믿음이어야 하겠습니다. 이 말이 쉬운 건 아니겠지만,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 하며 우리는 십자가의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죽음을 받아내시고 그 죽음을 돌려드린 후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왜 이렇게 고난에 그냥 두시는 걸까? 우리는 여전히 의심하고 질문합니다. 질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질문의 결과가 언제나 십자가를 향한 방향과 걸음이어야 한다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주신 것이라면 돌려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고난도, 아픔도 심지어 죽음도 하나님이 주셨다면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믿음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정말 그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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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다비다에게 일어난 아픔은 무엇입니까?
2. 질병과 죽음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면, 정말 믿는다면 그것도 한나님께서 받으십니다. 내가 이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아픔과 고난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