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평가
사도행전 9장 21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뒤바뀐 평가
20260811
회당을 찾아가 예수를 전하는 사울을 보며 다들 놀랐습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21). 같은 편이라 여겼던 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고 회당의 유대인들은 배신자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들의 인정과 평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의 평가였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겪는 우울과 고립, 열등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합니다. 각종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더 확장된 관계가 가능해졌지만, 반면 소비를 자극하는 알고리즘의 부정적 영향으로 인해, 넓어진 것에 비례하여 비교와 열등이 심각한 상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우울증은 청소년부터 시작해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기준이 나의 내면에 있지 않고 바깥, 즉 타인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나만의 삶이 있음에도 SNS를 통해 보이는 타인의 화려해 보이는 삶과 비교합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집니다. 그들이 받는 인기와 인정을 나도 받고 싶어집니다. 선택과 욕망, 인생의 방향이 이렇게 타인을 향하면, 결국 방황하고 망가집니다. 작은 화면으로 보이는 그 삶이 사실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라는 인생의 고유함과 올바름입니다. 이는 삶의 기준을 내 안에 세울 때만 가능합니다. 사울은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인정받던 유망주였습니다. 혈통이나 위계, 실력으로 볼 때 그는 상류층이었고 미래가 보장된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후 사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회당으로 여러 번 찾아가 예수를 전했고, 자신이 체험한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 날선 비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위 배신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쟁이들을 축출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던 그가 열렬한 예수쟁이가 되었으니, 놀라고 팔짝 뛰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를 전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난이 들리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가고 있는데도 사울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의 뒤바뀐 평가, 그들의 기준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뒤바뀐 평가로 살게 합니다. 믿음의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도 세상과 다른 가치로 살기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진짜라는 게 밝혀지고 납득할 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필요한 건, 타인의 평가 이전에 복음 안에서 나를 향한 우리 주님의 평가입니다. 이 하나가 전부를 바꿉니다.
오늘도 여러 말들이 나를 향하고 훑고 갈 것입니다. 그런 소리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지면 조급하거나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를 향한 십자가, 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는 마음을 닫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는 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옳다 하심이지, 세상의 어떠한 말들이 아닙니다. 이 사랑에 온전하다면, 십자가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누가 뭐라 하든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타인의 평가와 인정보다 우리 주님의 옳다 하심을 붙잡는 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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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울을 향한 말들은 무엇이었습니까?
2. 오늘, 이 하루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내가 누구의 평가를 우선하는지를 점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