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목소리
사도행전 9장 17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나를 부르는 목소리
20260805
사울을 복음 전도자로 사용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아나니아는 지체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는 사울에게로 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안수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17). 아나니아가 사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가 순종하여 안수하니 사울의 눈이 떠졌습니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를 향한 기도가 나를 살립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새가족들에게 가장 어색한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이 호칭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첫 만남에 살갑게 웃으며 '형제님, 자매님'하는 게 영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ㅇㅇ씨' 또는 'ㅇㅇ님'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형제/자매라 하는 호칭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다만 우리네 정서와 맞지 않아, 여전히 어색하긴 합니다. 중요한 것은, 뭐라 부르던 간에 너를 향한 마음일 것입니다. 너를 기억하고 이름을 부를 때, 서로는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직함만 부를 게 아니라, 이름을 같이 부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람의 많고 적음을 떠나 무리 속에 묻히지 않는 관계의 친밀함이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을 부릅니다. 말 그대로 옮기면 '사울 형제여' 라는 부름입니다. 형제라는 헬라어 '아델포스'는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가족을 뜻합니다. 아마도 당시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대속받은 한 피를 나눈 영적 가족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인을 잡아 종교재판을 벌이던 원수 같던 사울을 형제로 부르는 아나니아의 용기와 순종, 그리고 사랑이 참 놀랍습니다. 그는 이름을 부를 뿐 아니라, 기꺼이 그의 몸에 손을 대고 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부름과 서로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를 하이터치High-Touch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십자가 사랑 안에서 서로를 부르며 세워주고 기도하는 것은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세상은 마음에 들지 않고 계산과 이익이 다르면 기꺼이 단절합니다. 그게 깔끔하고 쿨하다고까지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신앙 공동체는 아닙니다. 나아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 또한 쿨한(?) 세상의 관계 속에서도 조금 더 다정하고 따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내 이름을 불러주어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부르셨고, 공동체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해서 나도 너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따지고 몰아세우려고가 아닌, 다정하게 품고 기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가장 따뜻한 부름은 기도의 부름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오늘도 너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그 기도를 전제로 너를 대하는 성도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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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아나니아는 사울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2. 오늘 내가 조금 더 품고 기도해야 할 너의 이름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