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선명성
사도행전 9장 16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복음의 선명성
20260804
아나이아에게 주님은 사울의 사명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16). 복음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은 고난입니다. 이것은 가능성이나 선택이 아니라 복음의 필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십자가를 지고 나는 편안하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들의 우스개 소리 중에, 청빙은 말라 죽고 개척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빙이든 개척이든 사명과 부르심 따라 가는 것이지만, 둘 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회가 다른 직장이나 업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복음으로 사는 일은, 그것이 목회든 다른 일이든, 모두 고난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복음과 세상은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 다른 가치로 살아야 하니, 이것저것 거칠 게 많습니다. 같은 돈을 벌고 써도 다른 가치로 벌고 쓰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명확할수록 복음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또한 꼭 그만큼, 아니 어쩌면 더 어렵고 험난할 지도 모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십자가의 길은 편안한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영광의 십자가만을 바랄 뿐, 고난의 십자가는 회피한다는 점입니다. 고난이 없이 영광이 없습니다. 죽지 않고 다시 사는 방법도 없습니다. 해서 복음은 이 땅에서 환대보다 냉대이며, 거친 사랑의 길입니다. 중요한 것은 냉대와 고난과 고생 중에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설명하신 사울의 사명은 다른 설명은 없고 고난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은사에 따라, 역할에 따라 큰 소유와 권력이 주어지기도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주신 분이 다시 찾으실 것들 뿐입니다. 많고 적든 어떻게 사용했는지 복음을 기준으로 물으실 것입니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이 선명하다면, 그것은 소유의 많고 적음을 떠나, 반드시 고난을 겪습니다. 어쩌면 권력이 크면 클수록 고난도 더 무거울지도 모릅니다. 복음은 선명하게,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의 선명성입니다. 적당히 흐려지고 타협할 때, 우리는 편안하게 잘 자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십자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의 오늘, 나의 하루는 선명한 복음인가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꾸 되물어야 합니다. 복음이 선명할수록 환대보다 냉대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십자가여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옳음을 선택하고, 나의 편함을 추구하기보다 정직과 성실, 복음으로 짊어지는 책임일 때, 바로 거기에서 죄를 이기는 권세와 생명의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이미 완성하신 복음 안에서 오늘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성도"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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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울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입니까?
2. 복음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는 오늘 나의 일상과 관계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