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사람, 엎어진 인생
사도행전 9장 4절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엎어진 사람, 엎어진 인생
20260716
갑작스러운 은혜의 덮침으로 사울은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4) 은혜의 순간이 황홀하고 감사하고 좋을까요? 사울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망의 질문을 받았고 그 순간을 감당할 수 없어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혜의 본질이 생명을 내어주신 십자가 사랑이어서, 대부분 은혜를 설명할 때는 아름답고 환한 영광과 평강을 묘사합니다. 듣는 이도, 또한 우리 스스로도 은혜는 매우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은혜의 순간은 충격적이고 압도적입니다. 황홀경은커녕 감히 서 있을 수도 없어 바닥에 눌린 것처럼 엎어진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늘 비슷했습니다. 엎드리고 나를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기쁨보다 죄스러움이, 감사보다 아픔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압도적인 은혜와 영광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드러졌다는 말은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은 게 아니라, 밀어 넘어뜨려진 것처럼 강압적으로 고꾸라진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뻣뻣하게 솟은 그의 몸과 마음을 주님은 그 환한 빛과 영광, 은혜로 덮어버리셨고, 사울은 감히 앉을 수도 없어 땅에 납작 엎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사울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이 질문 앞에 사울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했는데 박해라니요? 이제껏 자신이 한 일이 상급이 아니라 죄였다는 것을 대번에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핍박과 죽음이 모두 주님 자신의 것이었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주님께 행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사할 수 있을까요? 사울이 엎드려졌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사울은 하늘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 음성이 감격과 감사이기보다는 무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은혜 앞에서 엎드리고 엎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의 현실입니다. 자랑할 것은 예수의 십자가 밖에 없다고 했던 바울의 말이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오늘도 엎어져야만 합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내가 죄를 통해 잘 되고 잘 먹는 것보다, 은혜로 엎어지고 인생이 뒤집어지는 게 더 나은 일입니다. 아파도 그래야 합니다. 해서 오늘도 주님을 때리는 내가 아니라, 은혜 앞에 엎드려져 겨우겨우 겸손을 입고 감사를 고백하는 태도와 선택이어야 하겠습니다. 내세울 것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오직 주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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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하늘의 빛이 임했을 때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2.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주님을 향한 것이라면 어떤 것을 바꾸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