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사도행전 8장 34절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20260703
에디오피아 내시는 자신에게 다가온 빌립에게 성경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34). 성경의 의미를 질문하는 이 사람의 태도가 우리에게도 정말 중요합니다. AI 시대일수록 정답보다는 질문에서 차별이 나타납니다. 더군다나 기독교 신앙은 말씀에 대한 질문이 깊어지는 것이 성숙과 성장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질문의 힘을 주제로 한 <질문력>의 저자 마사히코 쇼지는, 관계에 있어서 질문을 통해 타인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질문은 추궁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질문으로 상대를 이기거나 입을 막아버리려고 하는데, 저자는 질문을 그렇게 사용하면 관계가 더 틀어지고 마음을 놓친다고 주장합니다. 추궁하는 게 아닌, 너를 이해하고 나를 표현하는 지혜로써 질문이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라고 할 때, 질문의 수준만큼 대답의 수준도 달라집니다. 특히나 딸깍이라고 표현하는 AI 시대에는 질문의 수준이 더 중요합니다. AI는 쉽게 답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질문하는 딱 그 정도로만 대답합니다. 그래서 AI 명령어인 프롬프트의 수준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입니다. AI는 질문자/명령자(곧 프롬프트)의 수준 이상으로 답을 주지 못합니다. 해서 더 질문하고 스스로 더 깊어질 수 있는 사람이 더 좋은 결과, 더 차별적인 결과를 얻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질문하는 힘은 더 중요합니다. 신앙은 질문할수록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없어질 때, 그러니까 질문하기를 멈추고 신앙을 하려 할 때는 두 가지 결과만 있습니다. 맹신이 되던지 또는 타협이 되고 맙니다. 둘 다 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2천년도 더 지난 성경의 말씀을 질문 없이 읽는다는 것은 무지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문자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헤아려 보려면 반드시 질문해야 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자신에게 다가온 빌립에게 질문합니다. 선지자의 글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이런 궁금함이 신앙의 깊이로 연결됩니다. 반면 질문하지 않고 대충 넘어갔다면 고난 받는 메시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을 두려워 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어떠한지, 내 속마음은 무엇인지 질문할 때, 그때 나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회심과 삶의 변화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까? 질문의 수준이 인생의 수준입니다. 질문할수록 더 깊어집니다. 해서 오늘도 그냥 살아온 습관대로 살 것이 아니라, 질문해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지 질문하십시오. 왜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지 질문하십시오. 말씀 앞에서 내 실체는 어떤지 질문하십시오. 내가 어느 부분에서 머뭇거리는지 질문하십시오. 구하면, 그러니까 질문하면 주실 것입니다. 찾으면 찾을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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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내시가 빌립에게 한 질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2. 요즘 내가 관심 갖는 질문은 어떤 것이 있나요? 나의 질문을 돌아보고, 질문을 분류해 봅시다. 그 질문이 나라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