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받음의 원리
사도행전 8장 19절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쓰임 받음의 원리
20260611
성령 세례와 나타난 은사를 본 시몬은 돈을 주고 그것을 사려 했습니다. 자신에게도 이런 권능이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19). 신앙의 중요한 이해 중 하나는 주도권입니다. 내가 하는 것인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는 것인지의 분별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싶은 사람, 시몬.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신의 행복입니다. 인권이라 불리는 모든 가치의 중심에 개인의 행복이 있는데, 여기에서 자유와 책임의 긴장이 발생합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자본주의가 엇물려서 우리 시대는 돈으로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이루려는 괴물이 탄생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류의 오래된 죄의 역사이긴 합니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더 구조적으로,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바탕으로 남녀노소, 대상과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퍼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신앙도 예외는 아닙니다. 나를 위한 신을 추구하는 일이 이제는 노골적이기까지 합니다. 내가 만든 신, 나를 위한 신이 아닐 때, 얼마든지 등 돌릴 수 있다는 식의 태도가 교회 안팎에 만연합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성경은 심판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사마리아의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나타난 성령 세례를 목격하고는 너무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도 그런 권능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배우기보다는 돈을 주고 사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살아온 방법이 돈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시몬의 말에서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예전의 교주였을 때처럼, 자기가 신비한 능력을 부리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주어가 나입니다. 신비한 권능으로 자기가 높아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 만족과 나의 행복, 내가 커지고 높아지는 일에 그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도 나의 소유처럼 여기는 이런 태도와 마음이 정말 위험합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전에 먼저 나를 소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섭리와 목적에 따라 나를 사용하십니다. 쓰임 받음의 원리가 이것입니다. 내가 하려는 내 만족의 일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거꾸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내가 쓰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일에 나타나는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만족을 치열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 이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린 나여야 옳습니다. 신앙과 믿음이라는 명분으로 교묘히 내 만족을 추구할 때, 우리는 성령을 거스르는 범죄가 되고 말 것입니다. 목회자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중직자일수록 더욱 섬세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쓰임 받는 순종이지, 내가 하고 싶은 욕망이나 야망이 아닙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내가 낮아짐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가깝습니다. 낮은 자로 오신, 자신을 종의 형체로 내어주신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쓰임 받고자 한다면 낮아지는 지를 점검하십시오. 이름도 없이, 빚도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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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시몬의 말에서 드러난 죄의 욕망이 무엇입니까?
2. 나의 일상에서 낮아짐의 순종은 어떤 것입니까? 순종으로 쓰임 받는 일을 찾아 실천해 봅시다.